풍장(風葬)1 - 황동규

■ 본문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주지시

성격 : 서정적, 주지적, 의지적, 관조적, 자연회귀적

제재 : 풍장

• 주제 : 자유로의 귀환 의지. 존재의 소멸을 통한 자연과의 합일(合一)

특징 :

자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을 노래함

유서 형식으로 시상을 전개함

 

■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풍장이라는 장례 형식을 소재로 존재의 소멸을 통해 얻는 진정한 자유를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풍장은 시체를 한데에 버려두어 비바람에 자연히 없어지게 하는 장사법을 지칭하는 것이다. 화자가 이와 같은 장례를 소망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연의 순리에 대한 순응이다. 삶과 죽음은 자연의 순환 과정의 일부이지 결코 삶이 죽음과 대비되어 중요한 가치를 갖는 건 아니다. 그 순리를 인정하고 따름으로써 진정한 자유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대 물질문명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의지이다. 물질문명은 인간의 삶의 윤택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우리의 삶을 옥죄고 억압하는 것이 되었고, 이를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감으로써 진정한 자유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존재와 소멸, 자유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함께 현대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 EBS수능특강 해설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시는 작가의 연작시 <풍장>의 첫 번째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자신이 죽은 후의 상황을 가정하며 남은 사람에게 자신의 장례 절차에 대해 당부의 말을 전하고 있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시적 화자에게 있어 죽음은 그저 담담하게 다가온다. 죽음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바람''죽음'의 이미지를 결합하여 일상의 고달픔과 질곡을 벗어나 정신의 가벼움과 투명함을 성취하는 동시에 영원한 이상 세계인 '무인도'에 도달하여 무한한 자연에로 귀환하려는 의지가 아름답게 그려진 작품이다.

1연의 전자시계는 현대 물질 문명을 상징하며, ‘전세 택시는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비극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검색은 당시 시대 상황이 억압적이었음을 암시한다. 2연의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은 물질적 욕망이 몸의 일부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 시적화자는 검색으로 표현된 억압적인 시대 현실과, ‘백금 조각으로 표현된 물질 문명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풍장을 바라는 것이다.

 

■ 작가 소개

황동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황동규 - 풍장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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