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소전 - 이문구


■ 본문

[앞부분의 줄거리] 작가인 ‘나’의 고향 친구 유재필은 그 성품이 본받을 만한 데가 있어 ‘나’는 그를 ‘유자’라고 부른다. 대기업 총수의 운전기사로 일하던 그는 우연한 사건으로 총수의 미움을 사 그룹의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노선 상무로 좌천된다.


 그는 운전자의 운전 윤리에 누구보다도 반듯하였다. 그러므로 운행 중에 때 아닌 곳에서 과속으로 앞지르기를 하거나, 옆에서 끼어들어 진로 방해를 하거나, 차선을 함부로 넘나들거나, 신호등이 바뀌기 전부터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뒤에서 경적을 울려 대거나, 운전 상식이나 도로 질서에 도전하는 자를 보면, 매양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를 잊지 않았다. 

  “츤헌늠…… 저건 아마 즤 증조할애비는 상전덜 뫼시구 가마꾼 노릇 허구, 할애비는 고등계 형사 뫼시는 인력거꾼 노릇 허구, 애비는 양조장 허는 자유당 의원 밑에서 막걸리 자즌거나 끌었던 집안 자식일겨. 질바닥서 까부는 것덜두 다 계통이 있는 법이니께.”

  그가 다루는 사건도 태반이 가해자의 운전 윤리 마비증이 자아낸 것이었다. 그렇지만 가해자가 그룹 내의 동료 운전수라 하여 팔이 들이굽는다는 식의 적당주의를 취한 적은 거의 없었다. 

 다만 사건 처리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기 위해 신상 기록 대장에 있는 주소를 찾아가 보면 일쑤 비탈진 산꼭대기에 더뎅이 진무허가 주택에서 근근이 셋방살이를 하는 축이 많았고, 더욱이 인건비를 줄이느라고 임시로 쓰던 스페어 운전수들이 사는 꼴이 말이 아닐 때는, 그 운전자의 자질 여부를 떠나서 현실적인 딱한 사정에 괴로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스페어 운전수는 대체로 벌이가 시답지 않아 결혼도 못 한 채 늙고 병든 홀어미와 단칸 셋방에 살고 있거나, 여편네가 집을 나가 버려 어린것들만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들여다보면 방구석에 먹던 봉지 쌀이 남은 대신 연탄이 떨어지고, 연탄이 있으면 쌀이 없거나 밀가루 포대가 비어 있어, 한심해서 들여다볼 수가 없고 심란해서 돌아설 수가 없는 집이 허다한 것이었다. 

  그는 결국 주머니를 털었다. 스페어 운전수의 사고에는 업무 추진비 명색도 차례가 가지 않아 자신의 용돈을 털게 되는 것이었다. 식구가 단출하면 쌀을 한 말 팔아 주고, 식구가 많은 집은 밀가루를 두 포대 팔아 주고, 그리고 연탄을 백 장씩 들여놓아 주는 것이 그가 용돈에서 여툴 수 있는 한계였다.

  그는 쌀가게에서 쌀이나 밀가루를 배달하고, 연탄 가게에서 연탄 백 장을 지게로 져 올려 비에 안 젖게 쌓아 주기를 마칠 때까지 그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집을 나와서 골목을 빠져나오다 보면 늘 무엇인가를 빠뜨리고 오는 것처럼 개운치가 않았다. 

  그는 비탈길을 다 내려와서야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곤 하였다. 산동네 초입의 반찬 가게를 보고서야 아까 그 집의 부엌에 간장밖에 없었던 것이 뒤늦게 떠오른 것이다.

  그러면 다시 주머니를 뒤졌다.

  그가 반찬 가게에서 집어 드는 것은 만날 얼간하여 엮어 놓은 새끼 굴비 두름이었다. 바다와 연하여 사는 탓에 밥상에 비린 것이 없으면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아 하는 대천 사람의 속성이 그런 데서까지도 드티었던 것이다.

  도로 산비탈을 기어올라 가서 굴비 두름을 개 안 닿게 고양이 안 닿게 야무지게 매달아 주면서, 

  “붝에 제우 지랑밲이 웂으니 뱁이구 수제비구 건건이가 있으야 넘어가지유. 탄불에 궈 자시던지 뱁솥에 쩌 자시던지 하면, 생긴 건 오죽잖어두 뇌인네 입맛에 그냥저냥 자셔 볼 만헐뀨.”

  쌀이나 연탄을 들여 줄 때는 회사에서 으레 그렇게 돌봐 주는 것이거니 하고 멀건 눈으로 쳐다만 보던 노파도, 그렇게 반찬거리까지 챙겨 주는 자상함에는 그가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눈시울을 적시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가 노선 상무로 나간 초기에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속절없이 봉변을 당하기에 바빴다.

  사망자가 난 사고에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운전수가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있거나 아예 달아나 버려서 분풀이를 하고 싶어도 상대가 없어서 앙앙불락하던 차에, 사고를 낸 회사에서 사고 처리반이 나왔다고 하면 대개는 옳거니, 때맞추어 잘 만났다 하고 떼거리로 달려들어 덮어놓고 멱살을 잡으며 주먹부터 휘두르고 보는 것이 예사였다. 나중에는 사람을 잘못 알고 실수했노라고 사과하고, 일을 처리하는 데도 싹싹하고 상냥하게 협조하는 위인일수록 처음에는 흥분을 가누지 못해 사납게 부르대고 날뛰는 편이었다.

  “야, 너, 흥부는 놀부같이 잘사는 형이라도 있어서 매품을 팔고 살었다지만, 너는 뭐냐, 뭐여, 못사는 운전수를 동료라구 둔 값에 매품이나 팔며 살 거라, 그거여? 너야말루 군사정변이 나서 구정권의 거물 비서 자격으루 끌려가서두 볼텡이 한 대 안 줘백히고 니 발루 걸어나온 물건인디 말여, 그런디 이제 와서 냄의 영안실이나 찌웃그리메 장삼이사헌티 놈짜 소리 듣는 것두 과만해서 주먹질에 자빠지구 발길질에 엎어지구 허니, 니가 그러구 댕긴다구 상무 전무가 아까징 끼값을 물어 주데, 사장 회장이 떨어져 밟힌 단춧값을 보태주데? 사대부 가문을 자랑허시던 할아버지가 너버러 이냥냄의 아랫도리루만 돌며 살라구 가르치셨네, 동경 유학 출신의 아버지가 동네북으로 공매나 맞구 살라구 널 나 놓셨네? 너두 처자가 있는 묌이 이게 뭐라네? 뭐여? 니 신세두 참…….”

  그는 봉변을 당하고 나면 자기를 저만치 떼어 놓고 바라보며 그런 허희탄식으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 핵심 정리

갈래 : 중편소설, 실명소설

성격 : 향토적, 해학적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배경 : 시간 – 1970년대, 공간 – 서울

제재 : 유자라는 사람의 일대기

주제 :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현대인의 삶에 대한 비판

특징 :

 ① ‘전’이라는 과거 글의 형식을 이용함

 ② 실명의 인물과 그의 실제 삶으 있는 그대로 적음

 ③ 간략한 이대기적 구성

인물의 특징

 - 나 : 이 글의 서술자이자 작가

 - 유자 : 총수가 기르던 잉어보다는 민물고기 술상을 더 좋아하는 소탈한 성격. 초수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을 지님. 잉어들이 떼죽음에 관해 총수가 다그쳐도 당황하지 않는 여유 있고 침착한 성격은 의뭉스러운 모습으로 드러나 있음

 - 총수 : 사람보다 값나가는 고기를 겉치레로 기르는 위선적이고 물질을 우선시하는 사치심이 강한 인물로, 가진 것 없고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거만한 성격을 지님


■ 전체 줄거리

 작가인 ‘나’에게는 ‘유재필’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심성이 곱고 착실한 사람이어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친구는 남에게 의존하는 것을 싫어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반면 그는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 감싸주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친구는 사실 현대 사회에 잘 맞지 않아 세상살이를 힘들게 하는 면도 많이 있다. 그 친구는 항상 자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남을 도우려 하며 부정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 친구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으면서까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다 결국 죽고 말았다. 부정과 요령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신의 삶에 철학을 갖고 떳떳하게 살다 간 그 친구야말로 우리가 기려야 할 인물이기에,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전(傳)’을 쓰는 것이다.


■ 작품 해설 

 이 작품은 제목대로 유씨 성을 가진 사림의 일대기 중의 일부이다. 전(傳)이라는 이름을 가진 일대기 형식을 빌려온 점이나, 사투리를 사용하여 향토적 정서를 강하게 한 점, 희극적 상황의 설정과 사건 전개 등은 전통적인 서사를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유자라는 인물의 다소 전근대적이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통해 사치심과 이기심에 젖어 허황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자세를 비판하는 방식은 웃음 속에 현실을 풍자하는 가면극과 매우 흡사하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을 쓴 이문구는 우리 전통을 계승하여 세계화를 이룩하려는 우리 문학의 흐름을 보여 준 작가로 평가할 수 있다.

- 윤희재의 현대소설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제목의 의미

 이 작품이 제목을 그대로 풀이하면 ‘유씨 성을 가진 사람의 작은 일대기’를 뜻한다. 죽, 유자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세태를 풍자하고 있으며, 그의 여유롭고 우스꽝스러운 말과 행동을 통해 총수의 허위적인 모습을 비꼬고 있다.


2. ‘유자소전’에서 사투리와 비속어 사용의 효과

 ‘유자소전’에서는 사투리와 비속어의 사용이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문체적 특징의 효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사투리의 사용은 토속적인 정감과 작품에 사실성을 부여하고, 독자가 주인공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비속어의 사용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대변하는 사회의 전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비판하고 있는 대상을 더욱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한다.


■ 작가 소개

 이문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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