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두석 - 성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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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 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 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 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서정적, 현실 참여적

• 제재 : 성에

• 주제 :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

• 시상의 전개 :

 1~4행 :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 차창에 핀 성에꽃

 5~10행 :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 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 성에꽃의 아름다움

 11행~16행 :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 성에꽃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나’

 17행~22행 :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 유리창에 비치는 친구의 얼굴

• 특징 :

 ① 어두운 사회 현실을 잔잔한 어조로 노래함.

 ② 지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시선을 유지함.

 ③ 역설적 표현을 사용함.


■ 작품 해설 1

 이 시는 엄동혹한의 새벽, 시내버스 차창에 서린 성에를 통해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에 대한 화자의 애정과 1980년대의 우울한 시대상을 노래한 작품으로, 지성과 감성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시적 화자는 추운 겨울 새벽 시내버스 유리창에 피어난 성에꽃을 보면서 이 버스를 타고 다녔을 평범한 이웃들을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성에꽃에서 가난하고 힘겹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의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차가 덜컹거리는 순간, 돌연 장면이 바뀌고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의 푸석한 얼굴을 떠올리며 지금까지의 생각은 우울한 시대상으로 인해 가로막힌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시는 새벽 시내버스 차창에 핀 성에를 통해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서민들에 대한 화자의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화자가 내다보는 차창 밖의 세상은 암담하며 고통스럽기 때문에 ‘엄동설한’으로 표현되고 있고, 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이 이용하는 시내버스의 창을 통해 화자는 그들의 삶을 인식하게 된다. 서민들은 힘들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며, 이들의 다양한 삶은 입김과 한숨으로 추운 새벽 시내버스의 창에 ‘성에꽃’이라는 흔적을 남긴다. 독자들은 ‘성에꽃’을 통해 화자가 갖는 공동체 의식과 연대 의식을 느낄 수 있으며, 그들의 삶에 공감하고 그들과 교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내면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미적 인식에 취해 있던 화자는 ‘함께 길을 걸었으나 /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를 떠올리며, 암울한 시대 현실로 인해 감옥에 갇힌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 꿈을 담는 틀, 꿈틀 문학 자습서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성에꽃’의 의미

 이 시에서 화자는 추운 겨울 새벽의 시내버스 창에 핀 ‘성에’를 ‘성에꽃’이라고 말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즉, 힘들고 어려운 시대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의 흔적에 그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담아 ‘성에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 ‘창’의 의미와 기능

 ‘창’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를 차단하는 동시에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의 연결 통로 또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성에꽃’에서 이른 새벽 성에가 낀 버스의 창은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가 된다. 서민들의 ‘막막한 한숨’, ‘정열의 숨결’,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의 얼굴’이 어리는 차창을 통해 인식한 세상은 민중에게 힘겹고 암울한 곳이지만 민중의 삶에 대한 열정이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하다.


 3. 1980년대 사회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신군부는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헌법을 개정하고, 이에 따라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이후 야당과 재야 세력은 줄기차게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였고, 이에 전두환은 1987년 4월, 일체의 개헌 논의를 금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대 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6월 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대규모 가두집회가 열리고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었다. 26일 전국 37개 도시에서 100여만 명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이에 정부는 국민의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여 6·29선언이 발표되었다. 최두석의 ‘성에꽃’에서는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라는 시구에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감옥에 갇힌 친구의 상황으로, ‘면회마저 금지’한 당시 사회의 강압적인 모습을 잘 드러낸다.


 4. 감성과 지성의 조화

 1990년대에 나온 ‘성에꽃’은 현실을 좀 더 깊이 파고들면서도 감성과 지성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시인의 균형 감각을 보여 준다. 그것은 현실의 정황과 함께 전형적으로 묘사해 내는 그의 시 정신에서 획득되는데, 그런 그의 시는 날카로운 쐐기처럼 현실의 거짓되고 모순 된 틈에 정밀하고 꼼꼼하게 박혀든다. 시인은 새벽 시내버스의 유리창에 서린 성에꽃에서 세상을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아름다운 몸짓을 본다. 생명의 힘을 느끼고 한숨과 정열의 숨결을 상상한다. 하지만 그 사상은 문득 차단당한다. 차가 덜컹거리는 순간 돌연 장면이 바뀌고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의 푸석한 얼굴이 그 한숨과 정열의 아름다움을 가로막는 것이다.                                         

 - 최종찬, ‘이야기 시론 주창자 - 시인 최두석’


■ 작가 소개

최두석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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