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 박봉우

반응형
728x90


■ 본문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高句麗) 같은 정신도 신라(新羅)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意味)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廣場).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休息)인가, 야위어 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 같은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 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 핵심 정리

• 갈래 : 서정시, 자유시, 참여시

• 성격 : 참여적, 상징적, 격정적, 산문적

• 제재 : 휴전선

• 주제 : 분단 극복에 대한 소망

• 특징 :

 ① 행의 구분이 없는 산문적 구성 방식을 취함.

 ② 전쟁과 분단 등을 의미하는 상징적 시어가 쓰임.

 ③ 설의적 표현인 ‘-가’가 반복되는 완곡한 어투가 나타남.

 ④ 수미 상관적 구성으로 전개함.

• 구성

1연 : 분단 상황에 대한 준엄한 인식

2연 : 불안한 대치 상황에서 느끼는 감상

3연 : 6.25 전쟁으로 인한 민족의 피폐하고 불안한 현실

4연 :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한 공포

5연 : 대립과 증오의 현실 개탄


■ 작품 해설 1

 이 시는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드러내는 참여시의 하나로서, 6·25 전쟁을 겪고 난 후의 분노와 적대감이 아직 채 식기 전인 1956년에 발표되었다.

 전쟁을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으로만 나타낸 것은 생생한 기억이 유발할 감정적인 거부 반응을 피하기 위해서일 것이며, 통일에 대한 기원을 말줄임표로만 처리한 것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판치던 당시의 풍토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암시적·상징적으로만 표현하고 있지만, 이 시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던 암울한 정서와 불안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었으며, 분단 극복과 통일을 바라는 소망에 대해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한 각 문장들은 ‘-가’라는 의문형으로 끝나는데, 사실 이는 분명한 답을 이미 가지고 있으므로, 설의법에 따른 표현이다.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은 시인이 제기한 비판적 의문에 대해 독자가 스스로 명백한 답을 찾도록 해 준다. 한편, 5연은 1연을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수미상관(首尾相關)의 구성 원리를 보여 준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이 시는 ‘휴전선’이라는 구체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사물을 소재로, 우리 민족이 처한 남북 분단의 비극적인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시인은 전쟁 혹은 비극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피하고 암시적인 시어를 선택함으로써 분단과 전쟁을 떠올릴 때 흔히 범하기 쉬운 감정의 과잉 분출을 막고, 독자들에게 분단이 우리에게 주는 피폐함을 상기시킨다.

 1연에는 우리가 처한 비극적 분단 상황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 있다. 즉, 전쟁이 일시 중단된 지금의 분단 상황은 ‘천둥 같은 화산’처럼 대립과 불신의 긴장 상태가 계속될 경우 전쟁이 터질 수밖에 없으며, 그걸 알면서도 ‘요런 자세로’ 있어야 하는 긴박한 대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요런’은 긴장 상태의 분단 상황을 비아냥거리는 화자의 심리가 내재되어 있는 표현이다. 2연에서 시적 화자는 먼저, 팽팽한 긴장감으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남과 북의 현실을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의 휴전선의 모습을 통해 말하고, 이어서 민족의 진취적 기상을 떨친 ‘고구려 같은 정신’이나, 분열된 삼국을 통일하는 ‘신라 같은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비판한다. 그리고‘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라며 통일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우리가 무엇 때문에 ‘불안한 얼굴’을 하고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반문한다. 3연에서 시적 화자는 우리의 현실을 ‘정맥’이 끊어진 신체로 비유하면서, 분단 상황이 고착되면 우리 민족은 ‘야위어’갈 수 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절망한다. 4연에서는 언제 다시 전쟁이 터질 지 모르는 분단 상황에서의 불안한 긴장감이 나타나 있다. ‘모진 겨우살이’ 같았던 6·25 전쟁의 비극적 체험을 겪은 화자는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5연에서는 처음에 제시한 전체적 주제를 수미 상관의 구조를 통해 강조하면서, 역사적 필연으로서의 분단 극복과 민족의 통일에 대한 시적 화자의 강렬한 소망을 보다 절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 천재교육, 천재학습백과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휴전선’의 시적 화자의 태도 

 이 시의 시적 화자는 남북 분단의 암울한 상황을 고발하면서 전쟁이 아닌, 민족의 대화와 화해만이 공존의 길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상호간의 적대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완곡어법(의문형)을 구사하여 분단의 고통을 감수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2. ‘휴전선’의 문학사적 의의

 이 시는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56년에 쓰인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은 남한이 타도해야 할 적으로 인식되던 시기로, 분단의 상황을 더욱 고착화시키는 것이 사회적 추세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시는 분단에 대한 균형적 시각으로, 민족의 화해의 차원에서 이를 극복하자고 제시한다. 따라서 반공적 이데올로기가 팽배하던 당시에는 이 시가 매우 선구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시인의 분단 극복 의지는 1960년대 신동엽 시인에게로 이어져 ‘껍데기는 가라’, ‘금강’등과 같은 뛰어난 문학적 성과를 낳는 밑거름이 되었고, 이러한 경향의 작품은 그 후 계속 등장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시는 분단 극복 문학의 가능성을 선구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3. 이 시에 나타난 표현상의 특징

 각 연의 종결 어미인 ‘~는가’는 설의적 표현으로, 현실 상황에 대한 시적 화자의 비판적 의도와 독자의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 데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 또한 1연과 5연의 수미상관식 구성을 통해 6.25전쟁과 같은 참혹한 상황을 또 다시 맞이할 수는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전쟁 혹은 비극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피하고 암시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감정의 과도한 분출을 억제하고 분단이 주는 피폐함을 담담하게 상기시켜 독자의 시적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 작가 소개

박봉우 – 국어국문학자료사전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