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궁가 - 정훈



■ 본문

하늘이 만드시길 일정 고루 하련마는

어찌된 인생(人生)이 이토록 괴로운고

삼순구식(三旬九食)을 얻거나 못 얻거나

십 년에 갓 한번 쓰거나 못 쓰거나

안표누공(顔瓢屢空)인들 나같이 비었으며

원헌간난(原憲艱難)인들 나같이 심했을까

봄날이 더디 흘러 뻐꾸기가 보채거늘

동편 이웃에 따비 얻고 서편 이웃에 호미 얻어

집 안에 들어가 씨앗을 마련하니

올벼씨 한 말은 넘어 쥐 먹었고

기장 피 조 팥은 서너 되 심었거늘

한아한 식구(食口) 이리하여 어이 살리

이봐 아이들아 아무려나 힘써 일하라

죽쑨 물 상전 먹고 건더기 건져 종을 주니

눈 위에 바늘 젓고 코로 휘파람 분다

올벼는 한 발 뜯고 조 팥은 다 묵히니

싸리피 바랑이는 나기도 싫지 않던가

나랏빚과 이자는 무엇으로 장만하며

부역과 세금은 어찌하여 차려 낼꼬

이리저리 생각해도 견딜 가능성이 전혀 없다

장초(萇草)의 무지(無知)를 부러워하나 어찌하리

시절이 풍년인들 지어미 배부르며

겨울을 덥다 한들 몸을 어이 가릴고

베틀북도 쓸 데 없어 빈 벽에 걸려 있고

시루 솥도 버려두니 붉은 녹이 다 끼었다

세시(歲時) 절기 명절 제사는 무엇으로 해 올리며

친척들과 손님들은 어이하야 접대(接待)할꼬

이 얼굴 지녀 있어 어려운 일 많고 많다

이 원수 궁귀(窮鬼)를 어이하야 여의려뇨

술에 음식 갖추고 이름 불러 전송(餞送)하여

좋은 날 좋은 때에 사방(四方)으로 가라 하니

추추분분(啾啾墳憤)하야 회를 내어 이른 말이

어려서 지금까지 희로우락(喜怒憂樂)을 너와 함께 하여

죽거나 살거나 여읠 줄이 없었거늘

어디 가 뉘 말 듣고 가라 하여 이르느뇨

타이르듯 꾸짖는 듯 온 가지로 공혁(恐嚇)커틀

돌이켜 생각하니 네 말도 다 옳도다

무정(無情)한 세상(世上)은 다 나를 버리거늘

네 혼자 신의 있어 나를 아니 버리거든

억지로 피하여 잔꾀로 여읠려냐

하늘이 만든 이 내 궁(窮)을 설마한들 어이하리

빈천(貧賤)도 내 분(分)이어니 설워 무엇하리


■ 핵심 정리

갈래 : 가사

성격 : 사실적, 체념적

제재 : 가난한 생활상

구성 :

 - 서사 : 궁핍한 생활에 대한 한탄

 - 본사1 : 농사를 짓기 힘든 집안 상황

 - 본사2 : 종들이 무시할 정도의 가난

 - 본사3 : 명절조차 쇨 수 없는 가난

 - 결사 : 가난한 삶에 대한 체념

특징 :

 ① 궁핍한 생활상을 사실적, 구체적으로 묘사함

 ② 가난함을 ‘궁귀’로 설정하여 대화하는 방식을 취함

 ③ 가난으로 인한 고통을 희화화함

주제 : 가난에 대한 탄식과 안빈낙도를 추구 / 궁핍한 생활로 인한 고통과 걱정


■ 작품 해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탄식하고 있는 노래이다. 작품의 후반부에는 어찌할 수 없는 가난이라면 이를 받아들이고 분수로 여기며 살겠다며 마음을 달래고 있다.

 이 작품은 빈곤한 생활상을 소재로 생활주변의 일상적인 것들을 엮어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었는데, 서두를 작자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시점을 주변으로 확대하여 가며 소재를 고루 배치하고 있어 그 구성이 비교적 잘 짜여져 있다. 즉, 삼순구식도 어렵다거나 십 년 동안 갓 한번 쓰기 어렵다는 내용, 농사 도구를 이웃에게 빌리는 내용, 씨앗을 찾으니 변변히 남아 있지 못한 모습 등을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궁핍한 삶에 대해, 화자는 처음에는 가난을 면치 못하는 자신의 고달프고 괴로운 인생을 한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나중에는 하늘이 준 가난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며 자신의 분수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을 드러내고 있다. ‘탄궁가’는 조선시대 시가의 주제로는 평범한 듯하지만, 시어나 표현기법면에서는 괄목할 만큼 개성적인 데가 있다.



■ 작가 소개

정훈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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