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답주인가 - 이원익



■ 본문

어와 져 양반아 도라안자 내 말 듣소

엇지한 져믄 소니 헴업시 단니산다

마누라 말쌈을 아니 드러 보나산다

나는 일얼탄뎡 외방의 늙은 종이

공밧치고 도라갈 제 하는 일 다 보앗네

우리 댁 셰간이야 녜부터 이러튼가

전민이 만탄 말이 일국에 소래나데

먹고 입는 드난종이 백 여구 나마시니

므삼 일 하노라 터밧츨 무겨난고

농잔 업다 하는가 호미연장 못 갓던가

날마다 무삼하려 밥먹고 단기면셔

열 나모 정자 아래 낫잠만 자나산다

아이들 타시런가 우리 댁 종의 버릇

보거든 고이하데

쇼먹이는 아이들이 샹마름을 능욕하고

진지하는 어린 손네

한 계대를 긔롱한다

삐삐를 제금 못고 에에고 제 일하니

한집의 수한 일을 뉘라셔 심셔할고

곡식고 비엿거든 고직인들 어이 하며

세간이 흐터지니 딜자힌들 어이 할고

내 왼줄 내 몰라도 남 왼 줄 모랄넌가

플치거니 맷치거니 할거니 돕거니

하로 열두 때 우수선 핀거이고

밧별감 만하 이사 외방사음 도원화도

제 소임 다 바리고 몸 끄릴 뿐이로다

비 새여 셔근 집을 뉘라셔 고쳐 이며

옷 버서 무너진 담 뉘라셔 고쳐 쓸고

불한당 구모 도적 아니 멀니 단이거든

화살 찬 수하상적 뉘라셔 심셔 할고

큰니큰 기운 집의 마누라 혼자 안자

긔걸을 뉘 드르며 논의을 눌라 할고

낫시름 밤근심 혼자 맛다 계시거니

옥 가튼 얼굴이 편하실 적 몇 날이리

이 집 이리 되기 뉘 타시라 할셔이고

헴 업는 종의 일은 뭇도 아니 하려니와

도로혀 혜여하니 마누라 타시로다

네 항것 외다 하기 종의 죄 만컨마는

그러타 뉘을 보려 민망하야 삶나이다

삿꼬기 마르시고 내 말삼 드로쇼셔

집 일을 곳치거든 종들을 휘오시고

종들을 휘오거든 상벌을 발키시고

상벌을 발키거든 어른 종을 미드쇼셔

진실노 이리 하시면 가도 절노 닐니이다.



■ 핵심 정리

갈래 : 가사

성격 : 비판적, 경세적, 비유적

특징 : 

     ①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농사짓는 주인과 종의 관계에 빗댐 

     ② 3․4조, 4음보의 율격으로 이루어짐

     ③ 상전에게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해 줌

주제 : 기울어진 집안 살림을 일으키는 방도


■ 현대어 풀이

아아! 저 양반아! 돌아앉아 내 말 듣소.

어떠한 젊은 손이 셈없이 다니는가?

주인님 말씀을 아니 들어 보았는가?

나는 이럴망정 외방의 늙은 종이 

공 바치고 돌아갈 때 하는 일 다 보았네.

우리 댁 세간이야 예부터 이렇던가?

전민이 많단 말이 일국에 소리 나데.

먹고 입는 드는 종이 백여구 남았으니,

무슨 일 하느라 터밭을 묵였는가?

농장이 없다던가? 호미 연장 못 가졌나?

날마다 무엇하려 밥 먹고 다니면서

열나무 정자 아래 낮잠만 자는가?

아이들 탓이던가? 우리 댁 종의 버릇 

보노라면 이상하데.

소 먹이는 아이들이 상마름을 능욕하고,

진지하는 어린 손들 한 계대를 기롱한다.

삐뚤린 제급 뫃고, 딴길로 제 일하니,

한 집의 많은 일을 누가 힘써 할까?

곡식창고 비었거든 고직인들 어이 하며,

세간이 흩어지니, 옹기인들 어이 할까?

내 왼 줄 내 몰라도 남 왼 줄 모를런가?

풀치거니 맺히거니, 헐뜯거니 돕거니.

하루 열 두 때 어수선 핀 것인가?

밖별감 많이 있어야 외방마름 도달화도 

제 소임 다 버리고, 몸 꺼릴 뿐이로다.

비 새어 썩은 집을 누가 고쳐 이으며,

옷 벗어 무너진 담 누가 고쳐 쌓을까?

불한당 구멍 도적 아니 멀리 다니거든

화살 찬 수하상직 누가 힘써 할까?

크나큰 기운 집에 상전님 혼자 앉아

명령을 뉘 들으며 논의를 뉘와 할까?

낮시름 밤근심 혼자 맡아 계시거니,

옥 같은 얼굴이 편하실 적 몇 날이리?

이 집 이리 되기 뉘 탓이라 할 것인가?

셈없는 종의 일은 묻도 아니하려니와

도리어 생각하니, 상전의 탓이로다.

내 생전 외다 하기 종의 죄 많컨마는 

그렇다 세상 보며 민망하여 여쭙니다.

삭꼬기 말으시고, 내 말씀 드르소서.

집일을 고치거든 종들을 휘어잡고,

종들을 휘오거든 상벌을 밝히시고,

상벌을 밝히거든 어른 종을 믿으소서.

진실로 이리 하시면, 가도 절로 일겁니다.


■ 작품 해설

 조선 중기에 이원익(李元翼)이 지은 가사. 허전(許唆)이 지은 〈고공가 雇工歌〉에 화답한 가사이다. ‘고공답가(雇工答歌)’라고도 한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 명신이던 이원익이 지었다 하며, 순조 때 필사된 것으로 보이는 ≪잡가 雜歌≫라는 노래책에 실려 전한다. 〈목동문답가 牧童問答歌〉·〈만언사 萬言詞〉·〈사녀승가 思女僧歌〉 등과 함께 문답가 계열의 가사에 해당된다.

 〈고공가〉에 화답하는 노래답게 비유적인 표현방법을 주로 썼으며, 제재와 주제, 문체와 기교 등에서도 상응하는 수법을 택하였다. 이 작품은 한 국가의 살림살이(체제와 형편)를 농사짓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통하여 제시한 것이다. ‘게으르고 헤아림 없는 종’에게 왜 ‘마누라’의 말씀을 듣지 않느냐고 비난하고, 이어서 ‘마누라’에게는 ‘어른 종’을 믿으라는 요지를 담고 있다. 여기서 ‘게으르고 헤아림 없는 종’은 나라일에 태만한 신하, 곧 허전이 〈고공가〉에서 비난한 바 있는 그런 부류의 신하들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고, ‘마누라’는 선조를, ‘어른 종’은 작자 자신을 포함한 당대의 고관들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즉, 조선의 백성이 천하에 으뜸인데, ‘드난 종’ 곧 벼슬을 하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는 신하들이 텃밭을 묵혀놓은 채, 밥만 먹고 정자 아래서 낮잠만 자느냐고 하면서 그들의 태만함을 꾸짖는다. 

 그 다음, ‘소먹이는 아이들’ 곧 지방관청의 이속들이 ‘마름’ 곧 지방관청의 수령들을 능욕하니, 한 집 곧 나라의 숱한 일들을 할 자가 없을을 탄식한다. 그리하여 곡식창고는 비게 되고 세간은 흩어지고 살림은 말이 아니게 되었다고 탄식한다. 곧 나라의 형편이 궁핍화된 현실을 한탄한 것이다.

 거기에다가 ‘외별감’·‘외방마름〔外方舍音〕’·‘도달화(都達花)’ 등 곧 변방을 지키는 무관들마저 맡은 임무에는 소홀하고 제 몸만 사리고 있으니, 누가 힘써 나라를 방어할 것인가! 임진왜란의 상처로 크게 기운 집주인, 곧 선조는 밤낮 근심 속에 편할 날이 없다. 이는 ‘헤아림 없는 종’ 곧 몰지각한 신하들 탓도 있겠지만, ‘마누라’ 곧 임금님 탓이 더 크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집안 일’ 곧 나라일을 고치려거든 ‘종’들 곧 신하들을 휘어잡아 상벌을 밝히고, ‘어른 종’ 곧 작자를 포함한 정승·판서 등을 믿어달라고 간청한다.그러면 ‘가도(家道)’ 곧 나라의 형편과 도리가 저절로 일어날 것이라는 충언(忠言)을 담은 것이다. 〈고공가〉에는 나라가 기운 원인을 신하들의 직무태만으로 단순하게 보았으나, 이 작품은 사태를 보다 자세하게 분석한 다음, 신하들의 충간(忠諫)만 들어준다면 해결이 가능하다는 자부심을 보여주고 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시어의 비유적 의미


2. 시적 화자가 생각하는 ‘상전’에 대한 태도

 시적화자는 ‘상전’의 처지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상전에게 책임을 묻는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크나큰 기운 잡에 상전님 혼자 않아 ~ 옥 같은 얼굴이 편하실 적 몇 날이니’에서는 상전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의 태도를 보이면서도, ‘이 집 이리 되기 뉘 탓이라 할 것인가 ~ 도리어 생각하니 상전님 탓이로다’에서는 ‘상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3. 현실의 문제에 대한 시적화자의 해결 방안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시적 화자가 생각하는 해결 방안이 나타나 있다. ‘집 일을 고치거든 종들을 휘어잡고 ~ 상벌을 밝히거든 어른 종을 믿으소서’를 보면, 부정적 상황에 대한 문제 인식과 더불어 ‘종(신하)’들을 휘어잡아 상벌을 명확히 하고 ‘어른 종(영의정)’의 충고를 믿고 따르라는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작가 소개

 이원익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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