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설 - 이규보


■ 본문

 거사(居士)에게 거울 하나가 있는데, 먼지가 끼어서 마치 구름에 가려진 달빛처럼 희미하였다. 그러나 조석으로 들여다보고 마치 얼굴을 단장하는 사람처럼 하였더니,

  어떤 손〔客〕이 묻기를,

  “거울이란 얼굴을 비치는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군자가 그것을 대하여 그 맑은 것을 취하는 것]인데, 지금 그대의 거울은 마치 안개 낀 것처럼 희미하니, 이미 얼굴을 비칠 수가 없고 또 많은 것을 취할 수도 없네. 그런데 그대는 오히려 얼굴을 비추어 보고 있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손’의 물음

하였다. 거사는 말하기를,

  “거울이 밝으면 잘생긴 사람은 기뻐하지만 못생긴 사람은 꺼려 하네. 그러나 잘생긴 사람은 수효가 적고, 못생긴 사람은 수요가 많네. 만일 못생긴 사람이 한 번 들여다보게 된다면 반드시 깨뜨리고야 말 것이네. 그러니 먼지가 끼어서 희미한 것만 못하네. 먼지가 흐리게 한 것은 그 겉만을 흐리게 할지언정 그 맑은 것은 상우지 못하니, 만일 잘생긴 사람을 만난 뒤에 닦여져도 시기가 역시 늦지 않네. 아, 옛날 거울을 대한 사람은 그 맑은 것을 취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내가 거울을 대하는 것은 그 희미한 것을 취하기 위함인데, 그대는 무엇을 괴이하게 여기는가?”

하였더니, 손은 대답이 없었다.                                                         ▶거사의 답변


■ 핵심 정리

• 갈래 : 고전 수필, 설(說)

• 제재 : 거울, 올바른 삶의 방법

• 주제 : 사물의 심층을 이해하는 통찰력. 

         삶에 대한 관조적 자세. 

         처세훈적(處世訓的) 의식과 현실에 대한 풍자

• 특징 : 

 ① 대화체, 번역체의 문체임.

 ② 유추의 방법을 통하여 상대를 설득함.

 ③ 심오한 철학과 경륜을 담고 있다.


■ 작품 해설 1

 ‘경설’은 흐린 거울을 취하는 어느 ‘거사’의 태도를 통해 처세와 삶의 방식을 일깨우는 교훈적 내용의 수필이다. 먼지가 끼여도 본디 맑은 속성은 변하지 않는 거울처럼, 사람도 부정적인 현실을 받아들인다 해도 본디 선한 속성은 변하지 않음을 들어 현실적인 처세관을 이야기하고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경설’은 ‘흐린 거울’을 보고 있는 거사의 태도를 통해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일깨우는 교훈적 수필이다. 거사는 거울에 먼지가 끼어도 사물을 맑게 비추는 거울의 본질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부정적 현실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사람의 맑은 본성이 흐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주의적 처세관을 보여준다.

 글쓴이는 ‘거울’이라는 사물을 통해 지나치게 청렴결백한 태도로만 일관하는 사람에 대한 비판 의식과 함께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올바른 처세관을 드러내고 있다. 즉, 결백하고 청명한 태도로 일관해서는 현실에 부딪혀 깨지기 쉬우니, 못난 사람도 감싸고 남의 허물도 수용하는 유연한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비유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천재교육, 해법 문학 고전 산문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두 인물이 바라보는 ‘거울’의 상징적 의미(지학사)

• 거사(居士): 반려(伴侶)로 삼고자 하는 친구라고 볼 수도 있고, 추구하고자 하는 세계, 혹은 화자를 알아주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본성은 맑으나 상대방의 흠이나 결함을 용서할 줄 아는 존재라고 파악할 수 있다.

• 손〔客〕: 맑음을 추구하는 존재로 인간에게 교훈을 주는 대상이다.


2. 설(說)(지학사)

  이치에 따라 사물을 해석하고〔解〕, 시비를 밝히면서 자기 의견을 설명하는〔述〕형식의 한문체 고전 수필. 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비유나 우의적 표현을 사용하여 논술하는 것이 특징이다. 고려 시대 이규보의 ‘경설(鏡說)’, ‘슬견설(虱犬說)’, ‘이옥설(理屋說)’, 조선 시대 강희맹의 ‘훈자오설(訓子五說)’, 권호문의 ‘축묘설(畜描說)’ 등이 있다.


3. 거사가 ‘흐린 거울’을 보는 행위와 문학 작품의 기능(지학사)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인간과 세계 그리고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 깨달음의 내용은 새로운 인식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윤리적인 성찰일 수도 있으며 심미적인 것일 수도 있다.

 ‘경설(鏡說)’의 거사는 ‘손’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은 의도적으로 흐린 거울을 본다고 말했다. 비록 흐린 거울이라 할지라도 거울의 본성인 맑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먼지를 닦아 내면 거울의 본래 모습이 돌아온다는 인식 하에, 사람들은 맑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기 싫어하므로 차라리 흐린 거울을 보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경설’의 글쓴이는 ‘거사(居士)’라는 객관적 인물을 설정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삶의 진리,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자신의 본성을 견지하면서도 타인의 결함이나 흠결을 포용하고 감싸 안을 수 있는 열린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독자는 ‘경설’을 통해 이러한 윤리적 · 도덕적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내면화하여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지표로 삼을 수 있다.


4. ‘손’의 역할(천재교육)

 이 글에는 ‘손’과 ‘거사’의 구체적인 관계나 ‘손’의 자세한 견해는 나타나 있지 않다. 여기서 ‘손’은 ‘거사’의 주장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먼저 통념을 제시하는 역할로 글쓴이가 의도적으로 설정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 작가 소개

이규보 – 인물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