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끝별

1. 본문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 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 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도반 : 함께 도를 닦는 벗.

 

2.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상징적, 의지적
• 주제 : 가지가 담을 넘는 과정과 의미
• 특징
 ① 동일한 시구의 반복을 통해 시적 상황을 강조하고 있음
 ② 의인화된 자연물의 심정을 추측하는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드러냄

• 구성 
 1연 : 가지가 담을 넘을 수 있게 하는 내적인 원동력
 2연 : 가지가 담을 넘을 수 있게 하는 외부의 시련들
 3, 4연 : 가지에게 담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

 

3. 작품 해설

 이 시는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는 과정과 그 의미를 통해 제약을 넘어서서 미지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한 용기와 협력의 가치를 탐구한 작품이다. 화자는 ‘~은/이 아니었을 것이다’, ‘~ 아니었으면’, ‘~ 못했을 것이다’와 같은 부정적 진술들을 활용하여 가지가 담을 넘는 데에 원동력이 되어 준 존재들을 부각하면서, 심지어 가지에게 장애물로 작용했을 것들, 즉 비나 폭설, 그리고 담 자체마저도 가지가 신명 나게 담을 넘는 시도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 EBS, 수능 특강 해설 참고

 

정끝별 - 가지가 담을 넘을 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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