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독백적, 반성적, 의지적
• 제재 : 유랑하는 삶
• 주제 :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지식인의 내면의식과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
• 특징
① 쉼표를 많이 사용하고 대등한 표현을 병렬함으로써 상황과 사유를 분석적으로 나타냄.
② 편지의 형식을 취하여 행과 연의 뚜렷한 구분이 없음
③ 토속어, 평안도 방언, 토속적 소재가 많이 등장함.
④ 산문적 서술을 통해 시상을 전개함.
⑤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시적 화자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냄(갈매나무).
• 구성
1~8행 : 상실과 방랑 끝에 타관 땅 어느 목수의 집에 세를 얻어 살게 됨.(시적 화자의 고난과 방황)
9~19행 : 좌절과 실의 속에 무기력하게 살면서 죽음까지 생각하는 절망적 상황에 이름.(시적 화자의 번민과 고통)
20~23행 : 삶의 고달픔과 슬픔이 운명적인 것임을 깨달음.(현실적 한계의 수용)
24~32행 : 겸허한 자세로 다시 운명을 긍정하고 현실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다짐.(무기력한 삶에 대한 반성과 현실 극복의 의지)
3. 작품 해설 1
일제 시대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 무기력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지식인의 내면 의식과, 시련을 극복하려는 굳은 삶의 의지가 잘 표현된 작품이다. 특히 편지의 형식과 산문적 진술, 토속적 소재와 평안도 방언의 사용 등이 화자의 내면 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전반부에는 일제 강점으로 인해 가족이 해체되고 신의주 셋방에서 절망감과 무력감 속에 침잠하는 화자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후반부에서는 절망적 상황을 운명으로 인식하며, 정리된 내면 의식과 새로운 삶의 의지로 전환하고 있다. 특히 겨울 산의 혹독함을 버티고 서 있는 ‘갈매나무’는 화자의 이러한 삶의 의지가 투영된 객관적 상관물로 볼 수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참고
4. 작품 해설 2
제목이 편지 겉봉의 발신인 주소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상실감과 부끄러움의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던 화자가 그것에서 벗어나 삶의 의지를 회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가족과 헤어지고 외롭게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어느 목수네 집에 세 들어 살게 된 화자는 셋방에서 무료하게 살면서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지나온 삶에 대해 반성하다가 현재의 절망적 상황을 운명적으로 인식하고 갈매나무를 통해 새로운 삶의 의지를 다짐한다. 즉, 이 시는 도입부에서 화자가 자신이 처한 암울한 현실 때문에 회한과 비탄으로 추락하는 심리(하강 구조)를 드러내다가, 삶에 대한 불가항력인 운명을 깨달으면서, 겸허하게 운명을 긍정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하게 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상승 구조). 특히 외로이 서서 눈을 맞으면서 추위를 이겨 내는 ‘갈매나무’는 굳고 깨끗하게 살겠다는 화자의 의지의 표상으로 나타나 있다.
- 천재교육, 해법문학 참고
5. 심화 내용 연구
1. 화자의 정서 변화(천재 교육)
1~19행 : 외로움과 쓸쓸함, 무기력함, 회한과 슬픔. 좌절과 절망
시상 전환 : ‘그러나’
21~32행 : 운명에 대한 인식, 내면의 안정,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
2. 시적 화자의 처지와 내면 의식(지학사)
이 시가 창작되던 시기는 일제 강점기로 혹독한 현실 속에서 시인은 우리 민족과 사회를 위해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 침잠하며, 가난과 가족 해체의 절망적 상황을 경험해야만 했다. 따라서 시인은 이러한 상황에서 느끼는 절망감과 무력감, 지식인의 사명과 회의, 가장으로서의 책임 의식, 가난의 고통 등으로 인해 매우 괴롭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3. ‘갈매나무’의 상징적 의미(지학사)
‘갈매나무’는 수동적이고 운명론적인 세계관 속에서도 맑고 꼿꼿하게 살아가겠다는 화자의 의지를 형상화한 소재이다. 화자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갈매나무는 어두워 가는 겨울 하늘 아래 하얗게 눈을 맞고 서 있지만 의연한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상상하면서 화자는 굳세고 정결하게 살아가리라 다짐하고 있다.
4. 제목의 의미와 편지 형식의 시(지학사)
제목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남신의주 유동’에 사는 ‘박시봉 씨네’라는 의미로, 편지 봉투에 쓰는 발신인의 주소를 적는 형식이다. 여기서 ‘방(方)’은 편지에서 세대주나 집주인의 이름 아래 붙여 그 집에 거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시의 제목은 신의주 남쪽 유동이라는 마을에 박시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의 셋방에서 화자가 자신의 근황을 편지 형식으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편지 형식의 시는, 시적 화자의 내면 의식과 심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장점이 있다.
5. 이 시의 토속성이 지니는 의미(천재교육)
이 시는 다양한 사물들과 자연적 소재들을 평안도 지방의 독특한 사투리로 표현하고 있어 토속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해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지키고자 한 시인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즉, 백석은 토속성을 강하게 드러낸 자신의 시를 일제에 대한 간접적인 저항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6. 작가 소개
백석
국토 분단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간다. 한국 현대사에서 분단이야말로 한반도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상처이며, 비극의 원체험인 것이다. 분단은 온갖 상실과 망각, 이산의 고통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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