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공산토월)
“몰라보겄네, 되게 컸어.”
그는 내 손을 잡고 여러 차례나 힘지게 흔들었다. 그래도 내 입에서는 아무 말도 새어나오지 않고 있었다. 요즘도 나는 하루 열댓 번 이상 헛손질하듯 하며 형식적인 악수를 자주 하고 살지만, 또 앞으로도 매양 그러기가 쉽지만, 그때 해 봤던 그 석공과의 악수만은 언제까지라도 못 잊어할 것임을 스스로 믿는다. 그것은 내가 생전 처음 처자를 거느린 어른하고 악수를 해 본 최초의 경험이라는 한 가지 뜻만으로도 그렇다. 그는 얼굴이 허옇게 쇠었다는 겉보매 외에 조금도 달라진 데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결에 그는 내 손을 뿌리치듯 물리고는 불쑥 내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두 손이 발등에 닿도록 허리를 굽혀 절하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가 석공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웃어 보이고 있었다. 어쩌면 울고 있었는지도 모를 표정이었지만…… 석공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마치 자기가 그처럼 살아 돌아왔음이 무슨 큰 허물이라도 되는 듯한 표정으로. 어머니가 앞서 걷기 시작해서야 늘어놓은 두름처럼 정지됐던 행렬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랑을 건너고 마당에 발을 디뎠다. 그는 그리던 집에 들어선 것이었다. 석공은 성급하게 울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여러 사람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어느새 먼저 들어왔던가, 신 서방 댁은 하얀 대접에 두부를 가득 담아 들고 서있었다.
“엄니는 쓸디읎이 두부를 먹으래유.”
석공이 그것을 마다하고 그냥 울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신 서방은 정색을 하며 나무라듯 말했다. / “얘, 이 두부 저 으르신께서 쒀 오신 게여.”
석공이 신 서방 눈길을 따라 돌아본 곳엔 우리 어머니의 미소가 있었다. 석공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신 서방 댁이 입에 물려 주는 대로 목을 쩔룩거려 가면서 자기 얼굴만큼이나 하얀 두붓덩이를 허발하고 먹어치웠다.
▶형무소에서 나온 석공과 반기는 사람들
이튿날. 아마 동네에서 동트며 일변 일어나 맨 먼저 연장자루를 쥐고 나선 사람은 석공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희 엄마 말에 의하면 그날 밤을 온통 뜬눈으로 새우더라는 거였다. / “사 년 반이나 굶은 사랑 벌충헐랑께…….”
입이 걸었던 상술 어머니는 웃느라고 말끝을 못 맺었지만, 정희 엄마는 정색을 하며 ‘일이 하고 싶어 잠 못 자던’ 석공에 대해 자세하게 풀이를 달았었다. 형무소에 들앉아 있는 동안 처자 다음으로 그립고 잡아 보고 싶어 못 견딘 것이 낫, 호미, 쇠스랑이며, 밤마다 귓전에 들려온 것이 도리깨 소리, 탈곡기 소리였다고 실토하더라는 것이다.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정희 엄마 말을 그대로 곧이듣고 싶었다.
▶간절히 일을 하고 싶어 했던 석공
석공은 가장 모범적인 일꾼이 되어 갔다. 그처럼 건실한 농군도 다시는 없을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석공하고만 품앗이하기를 원하고, 같은 값이면 석공의 품을 사고 싶어 서로 다툼질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는 누가 시키기 전에 먼저 알아서 일을 추어내고 남의 늑장과 꾀부림도 앉아서는 못 보던 성미였다.
▶모범적인 일꾼인 석공
그러나 사철 내내 그럴 순 없는 것 같았다. 날이 거푸 궂거나 장마 기운이 몰린다 싶으면 그 스스로가 된 일을 삼가면서 몸조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곤 하였다. 고문으로 골병이 든데다가 형무소 독까지 몸에 배고 뿌리를 박았던 것이다. 워낙 되게 당한 탓일 것이라며 석공 자신도 응어리가 박이고 어혈이 들었었음을 시인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몸을 보하고 조섭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꾸미는 것 같지는 않았다. 쇠꼬리 한 대 안 들여가고 개 한 마리 잡지 않았던 것은 무슨 자신이 있었던 걸까. 그보다는 연장 쥐고 움직임을 만병통치로 알았음이 분명하다.
▶몸조리에 신경을 쓰는 석공
그는 자기 집 농사일에만 부지런을 피운 것이 아니었다. 이웃 동네 크고 작은 일에도 부러 빠진 적이 없었다. 아니 그가 없으면 되는 일이 별로 없을 지경이었다. 추렴이나 울력으로 마을의 곳집을 고친다거나 봇둑 보수가 있게 되면 으레 석공이 앞장서 나서야만 버그러지고 뒤틀림이 없었다. 구장, 반장이 엄연하게 따로 있었건만 석공 말이라야 설복을 했고, 어련하랴 하며 믿거라 했던 것이다. 사변통에 어떻게 없어진지 모른 마을 상례 기구가 마련되기까지 상여계와 상포계(喪布契)를 일으켜 마무리 지은 것도 석공의 힘이었고, 이중계(里中契)가 해를 더해 갈수록 번창을 본 것도 순전 그의 적공이던 것이다.
▶마을 일을 앞장서서 맡아 하는 석공
그의 심덕은 정평이 나 있어, 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아이들까지도 은연중 어려운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심어 가는 것 같았다. 석공의 손발이 아쉬워질 때에는 그러니 안 그러니 해도 역시 아침을 끓이며 저녁 걱정하는 집일수록 절실하며 반드시 있어야만 제격일 것 같았다. 갑갑하고 궂은 일일수록 그것은 더욱 그런 듯했다. 그는 꿋꿋이 그리고 성심껏 일을 치러 내었다. 7월 삼복 땡볕 아래에서 남의 무덤을 파고, 8월 장마 궂은 밤비 속에서는 갓난애 무덤을 꾸려 냈다. 동네에서 죽은 어린애 관은 거의 석공 혼자서 지고 올라가 매장해 주기 일쑤였던 것이다.
들으나마나한 공치사 몇 마디 외엔 아무런 보수도 없던 일들, 마치 그런 일에 봉사함만이 자기의 직분이며 도리인 것처럼, 수술하다 목숨을 거둔 피투성이 이웃 송장도 혼자 업어 나르고, 술 취해 장바닥에 자빠진 사람은 도맡아 구완해 주기를 일삼고 있었다. 상한 시체 염을 해 주고, 묵은 산소 면례가 있어 파분(破墳)이 되면, 썩은 관을 먼저 뜯어 내던 이도 맡아 놓고 석공이었다.
▶궂은 일을 도맡아 한 석공
누가 그를 그런 사람이도록 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천성이 그런 위인이라기로, 천성을 모개로 셈해 말하기엔 너무 무모하다는 각성을 스스로 하게 되었다. 인고의 형무소 세월에서 무엇인가 터득한 게 있었을까. 모르는 문제를 되다 만 소리로 둘러칠 수는 없다.
출옥 이듬해에 석공은 아들을 낳았다. 정희 엄마는 낭자를 자르고 다복다복하게 신식으로 지졌고, 까만 벨벳 치마를 해 입은 것도 두 번인가 보았다. 벼르던 것 가운데서 뾰족구두만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점차 셈평이 펴이고 일상의 형편도 느는 것이 눈으로 보였으며, 살게 되느라고, 여름내 곱삶이를 면할 수 있도록 농사도 해마다 대풍이었다. 형무소에서 그토록 몸서리나게 참아야 했던 그의 소망, 그렇다, 그 일을 그는 원이 없을 만큼 해 댔던 것이다.
밤에 지나다 들으면 석공 내외가 거처하는 문간방 쪽에서는 으레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오곤 했다. 라디오 한 대 장만하기가 송아지 한 마리 사들이기보다 갑절은 어렵던 시절이었다. 그는 신문을 구독하고, 쉬운 잡지도 열심히 사다 읽는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시집와서 츰으루 사는 재미에 살어유……”
동네 사람 중에서 맨 먼저 나일론 것을 해 입고 자랑 삼아 왔던 정희 엄마는 천식으로 몸져누운 어머니 다리에 부채질을 해 주며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일론이 사치품이다 아니다 하며 그 수입 여부를 놓고 사회부와 상공부가 자루를 찢던 시절이었다.
“자긔 징역살이헐 때 고상했다구 예전 고렷적 얘기 해싸메, 그 보상 허느라구 한 감 끊어 왔대유……. 눈 딱 감구 해 입었슈.”
그녀는 숨을 돌린 다음.
“재봉집이다 맽긴께 공전이 껏보리 한 가마 금새나 들더먼유. 미두계(米頭契) 장변을 댕겨다 쓰더래두 재봉침 한 틀은 살라구 그류.”
“그럴 테지……. 그러야 쓰구…….”
▶행복한 생활을 즐기게 된 석공 내외
어머니는 고대 넘어가는 숨을 붙들며 석공의 기특함을 되뇌곤 했다. 석공은 매일처럼 어머니 병문안을 왔다. 용태가 걱정되어 밤잠을 설친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어머니의 수의도 석공 손으로 입혀졌다. 유택 역시 석공 손에 이루어졌다. 그 어느 무덤보다도 정성으로 물매 잡힌 봉분이 돋우어지고, 지심으로 뗏장을 입혔다. 일이 그에 이르도록 석공이 자원한 고초가 어느 만큼인 줄도 나는 모르지 않았다. 어디 좋다더라는 약이 있으면 자기네 곡식 자루를 메고 가서라도 그는 구해 왔었다. 용하다는 의원 한 번 보이기 위해 밤길 새벽길을 가리지 않고 뛰었었다.
▶어머니를 위하는 석공의 지극한 정성
그 무렵의 나는 겨우 중학 2년생의 어리보기였지만, 도대체 어찌하여야만 그의 성의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는지 궁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참고서와 사서가 있을 수 없는 오랜 세월의 숙제이기도 했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신세 갚음이었지만, 그러나 그것도 그런 것이 아니었다. 관촌에서 노박이로 살고 있는 한은 내가 되려 폐를 끼치며 도움을 받아야 될 것 같았고, 실지 그리 됐음이 사실이던 것이다.
▶석공에 대한 그리움
■ 핵심 정리
• 갈래 : 연작소설, 단편소설
• 성격 : 자전적, 회고적
• 배경 : 시간적 - 현재(1970년대 서울), 과거 회상(1950년대) 6 · 25 전쟁 무렵
공간적 - 관촌 ~ 서울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제재 : 고향 마을의 석공(石公)
• 주제 : 신실했던 인물 석공에 대한 추억
• 특징 :
① 현재의 ‘나’가 과거를 추억함. 현재(1970년대) - 과거1(1950년대) - 과거2(1960년대)
② 토속어와 비속어의 사용으로 현장감과 생동감 확보
③ 1인칭 독백체로 서술하여 회고적 성격을 지님
■ 작품 해설
이 작품은 ‘관촌수필’ 8편 중 다섯 번째 작품인 ‘공산토월’로서, 성장한 ‘나’가 과거의 유년 시절과 대학생 시절을 회상하는 구조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이 글의 ‘나’는 신문 기사로 접한 16세 소년의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의 신문 기사를 접하면서, 과거 유년 시절에 가족과도 같이 살았던 ‘석공’을 떠올리게 된다. ‘석공’은 마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신실하고 근면하면서도 남의 일을 앞장서서 했던 헌신적인 인물로, 산업화 과정에서 사라지고 있는 공동체적 삶의 표본에 해당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석공’의 삶을 통해서 현재 사라지고 있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현재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공동체적 삶의 중요성과 가치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편, 16세 소년의 살인 사건은 ‘나’로 하여금 ‘석공’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하지만, ‘나’로 하여금 개인주의가 만연한 산업화된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내 주기도 하는데, 이러한 ‘나’의 인식은 산업화를 겪으며 공동체적 생활이 있던 농촌이 해체되고 붕괴되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안타까움과 비판 의식을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전체 내용
- 제 1편 <일락서산> : ‘나’는 양력 정초에 성묘를 목적으로 고향에 들러 지금은 한 철도 공무원의 주택으로 바뀐 예전의 고향집을 방문한다. 13년 만의 귀향이다. ‘나’는 선조인 토정 이지함 선생이 심었다는 왕소나무가 없어졌다는 것을 가장 가슴 아파한다. 그리고, 근방의 마을 사람들에게 추상 같은 권위자였으며 근엄한 선비의 기품을 지닌 할아버지,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6․25 전쟁 즈음 비운을 맞은 아버지, 어릴 적 행랑채의 계집종 옹점이 등에 대한 추억에 잠긴다. 이 소설은 하루 동안의 귀향 체험이다. 소설은 ‘잘 있어라 옛집, 마지막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번 옛집을 되돌아 보았을 때, 그 너머 서산마루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지는 해가 있었다.’라는 시적인 문장으로 끝난다.
- 제 2편 <화무십일> : 6․25 전쟁 때, 윤 영감 일가가 피란을 내려 와 문간방에 머문다. 그런데 그 가족은 분란에 휩싸인다. 며느리가 읍내 여관에 있는 서울 사내와 눈이 맞아 달아나 버리고, 충격을 받은 아들은 뒷산에서 목을 매 자살한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그들에게 인정을 베풀었건만 모두 허사였다. 결국 윤 영감은 늙은 마누라와 함께 정처없이 길을 나선다.
- 제 3편 <행운유수> : 어떤 퇴물 기생의 딸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옹기점 독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이름이 ‘옹점이’인 여자 종. ‘나’와 성장기를 같이 했던 착하고 수다스러운 여자. 그 여자의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과 인생 유전을 가슴 아프게 그리고 있다.
- 제 4편 <녹수청산> : 할아버지 댁에 드나들며 허드렛일을 하던 이웃집 여자가 있다. 대복이 어머니. 좋은 일에는 개미 허리로 웃어 주고, 궂은 일에는 눈물도 싸게 먼저 울어 댄다. 욕을 하려 들면 동네 구정물은 혼자 다 마신 듯이 말이 걸고 상스럽다. 그녀의 순박한 삶과 이웃과의 정겨운 모습. 그러나 그 여자네 가족의 삶도 무너져 내린다.
- 제 5편 <공산토월> :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내 신현석의 삶의 기록. 6․25 전쟁 때 좌익의 끄트머리에 붙었다가 옥고를 치르고 나온 관촌 말의 석공(石工)인 그는 마을의 궂은 일을 앞장서 해결하고 적빈(赤貧)에 시달리는 이웃의 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그가 죽을 병을 얻어 훗날 서울에 왔을 때 ‘나’는 그를 위해 혼신을 다한다.
- 제 6편 <관산추정> : 소비 문화와 퇴폐의 물결로 한내(大川)가 허물어진다. 둑에 지천으로 버려진 콘돔이 돼지 먹이풀에 섞여 돼지가 죽는 일이 빈번할 정도다.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생활 터전이 더렵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경우 바르고 남 위하는 마음이 따뜻한 친구 ‘유복산’이 이 마을을 꿋꿋하게 지켜 내고 있다. 그가 관산추정, ‘고향에서 꼴 베는 농부’인 것이다.
- 제 7편 <여요주서> : 어느 소년이 아버지 병구완을 하려고 꿩을 잡는다. ‘나’의 착한 친구 신용모가 그 꿩을 팔아 주려다 자연 보호에 역행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는다. 인간을 배제한 사이버 자연 보호와 공권력의 남용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 제 8편 <월곡후야> : 한내에서 떨어진 벽촌에 중년 사내가 소녀를 겁탈한 사건이 발생한다. 동네 청년들의 그 사내에게 폭력을 가한다. 작가는 파렴치범인 사내의 죄악보다 그를 단죄하는 청년들의 태도를 바판하며, ‘지역 사회 발전과 근대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고 떠드는 ‘정치적 구호’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2. ‘관촌 수필’의 문체와 그 의의
이문구의 문장은, 작중 현실을 바라보는 서술자의 관점이나 태도를 농후하게 담고 있고, 예의 그 복잡한 문장은 이러한 심리적 개입의 자연스러운 침투에도 크게 기여한다. 물론 작가의 심리적 개입이 소설의 성과에 반드시 유리하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작가는 작중 현실에의 심리적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하거나 적어도 관점이 개입되어 있다는 느낌을 독자들에게 주지 않기 위해 각별히 조심을 하는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일이 필요하고 또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문구는 굳이 스스로의 개입을 피하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작중 사건을 이야기하는 속에 그것을 능동적으로 포함시키기까지 한다. 그 이유는 이문구가 그의 작품 세계를 바로 자신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접속되어 있는 것으로, 나아가서는 스스로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의 현장으로 다룬다는 데에 있다. 작가의 능동적 개입은 이 경우 작중 사건의 현실감과 친근성을 확보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러한 특징은 주인공 또는 서술자가 '나'로 설정된 경우에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문구의 소설에는 그런 예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의 연작 '관촌 수필'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전형적인 예이다. 이 연작에서 소설적 전개의 중심인 '나'는 바로 작가 자신이며 작품 속의 관촌은 바로 그의 고향이고 모든 사건은 '나'의 유년의 경험으로부터 생생한 경험적 부피를 띠고 서술된다. 이러한 세계를 즐겨 다루면서 심리적 개입을 고의적으로 은폐하려 한다면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거나 심지어는 기만적 노력이 될 것이다.(출처 : 김흥규, '생생한 고향의 기억과 상실')
■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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