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삐딴 리 - 전광용 |
줄거리 이인국 박사는 종합 병원을 운영하는 외과 전문의다. 병원은 매우 정결하지만, 치료비가 다른 병원보다 갑절이나 비싸다. 그는 양면 진단(병의 증세보다 경제적 능력을 판단)을 통해 철저히 부를 추구한다. 또한, 경력을 화려하게 할 셈으로 도미할 계획도 세운다. 어느 가을 날, 미 대사관의 브라운과 만날 시간을 맞추려고 회중시계를 꺼내 보다가 30년 전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일제 강점기 시대 제국 대학을 졸업할 때, 회중시계를 부상으로 받는다. 잠꼬대도 일본어로 할 정도로 완전한 황국 신민으로 동화되어 철저히 일본인으로 살아왔다. ‘國語常用(국어상용)의 家(가)’란 액자도 받았다. 광복 후의 격변기 북한에서 그는 소련군 점령하에 민족 반역자로 낙인찍혀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이질이 전염병으로 돌자 그는 감방에서 환자 진료를 전담하는 행운을 얻는다.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소련군 스텐코프 소좌의 뺨에 붙은 혹을 제거하는 수술에 성공, 스텐코프로 인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며, 친소파로 돌변하여 영화를 누린다. 그리고 시대 흐름을 타야 한다며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 보낸다. 그는 1.4후퇴 때 아들의 소식도 모른 채 월남한다. 그 아픔 때문인가, 아내를 잃는다. 그러나 그는 미군 주둔 시에도 그 상황에 맞는 처세술로 현실에 적응하며, 일제 강점기 시대에 같이 일했던 간호사 혜숙과 재혼해 아들을 낳는다. 관사에서 브라운을 만난 이인국 박사는 고려청자를 그에게 선물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자책감보다는 그의 취향을 생각하며 걱정한다. 그는 그 특유의 처세술로 브라운을 만족시키면서, 국무성 초청장을 받는다. 그의 마음 속에는 새로운 포부와 희망이 부풀어 오른다. 그는 관사를 나와 비행기 회사가 있는 반도호텔로 향한다. 가을 하늘은 푸르고 드높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 시간 - 해방, 6.25를 전후한 1940~1950년대, 공간 - 북한과 남한
성격 : 풍자적, 냉소적, 비판적
구성 : 역순행적 구성, 몽타주 구성
→ 이 작품의 구성은 이인국 박사가 브라운씨를 만나러 가는 현재의 상황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 상하는 형식으로 쓴 소설임. 10개의 장절 중 첫째와 마지막이 현재이며 가운데 8개 장절 중 7 개는 과거에 대한 회상이며 5번째 장절에 현재가 잠시 나타난다. 따라서 <타임 몽타쥬 (time montage)>형식을 취한 구성.
▶현재 : 이인국 박사의 처세술과 인간성.
* 회상 매체 1 - 회중 시계
* 과거 - 일제 치하. (일어로 처세함)
▶현재 : 미 대사관으로 가는 자동차 안.
* 회상 매체 2 - 석간 신문 머리 기사
* 과거 - 광복 후. (노어로 처세함)
▶현재 : 고려 청자를 선물함. 미 국무성의 초청 받음.
경향 : 신심리주의적 수법
표현 : 몽타주 수법
등장인물
이인국 : 외과 의사. 50대. 인술보다는 돈과 권력에 따라 살아가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며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하는 인물로, 지조나 신념, 공동체 의식이 희박한 변절적 순응주의자.
[이 작품은 이인국의 인생 역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변 인물(아들, 딸, 일본인, 소련인, 미국인 등)은 이인국의 생애를 그려 내는 데 필요한 ‘지나가는 사람’ 역할만 한다.]
나미(일본식-나미꼬) : 미국에 가 있는 딸. 영문학 전공. 동양학을 전공하는 외국인 교수 와 결혼하려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냄
아내(혜숙) : 간호원 경력이 있는 후처. 거제도 수용소에 있을 때 죽었음
아들(원식) : 광복 후 스텐코프 소좌의 배경으로 요직에 있는 당 간부의 추천을 받아 소련 유학을 갔으나 생사를 알 수 없음
혜숙 : 서울에서 만나 후처로 들어온 여인. 20년의 연령 차가 있음. 사이에 돌 지난 어린 것이 있음
스텐코프 : 이인국이 왼쪽 뺨에 있는 혹을 제거해준 소련군 장교
브라운 : 미 대사관에 근무하며 이인국을 돕는 자
주제 : 시류와 타협하면서 자신의 안녕만을 위해 변절적으로 순응해 가는 기회주의적 인간 비판
이 작품은 1962년 <사상계>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 대표적인 ‘인물소설’이다. 민족 수난기를 배경으로, 한 의사의 이야기를 지극히 풍자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철저한 황국 신민으로, 광복 직후에는 친소파, 1.4 후퇴 이후에는 친미파로 변절하여 살아가는 카멜레온적인 인간형을 비판하는 동시에, 힘없고 가엾은 민족의 자화상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꺼삐딴’이란 영어 ‘캡틴(captain)’에 해당하는 러시아 어 발음이다.
소설의 서두는 이인국 박사의 딸 ‘나미’가 미국인과 국제결혼을 한다는 사실에 가벼운 분노를 느끼면서도, 자신의 경력에 윤기를 더할 셈으로 도미할 계획을 세우고 미 대사관 직원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결말 부분은 이인국 박사가 브라운을 만나 선물을 주고 나와서는 비행기 표를 알아보러 반도 호텔로 가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따라서, 작품의 서두와 결말을 제외한 부분에서 독자는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광복기를 거쳐 1950년대에 이르는 그의 삶의 행적을 보게 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이인국 박사의 과거 변절적 삶을 현재의 삶과 관련지어 평가하기 위해 채택된 것이다. 쉽게 말하면, 과거의 행적이 그러했기에 현재의 삶도 그러하다는 인과적 접속인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주인공을 정점으로 하는 인물 소설이다. 따라서, 이인국 박사의 삶의 태도가 철저히 해부된다. 그는 민족사적 비극과 역경을 정신으로 이겨 낸 승자가 아니라 자기 일신만을 위한 처세술로써 개인적 영달을 추구해 온 도덕적 파탄자이다. 그는 그런 삶의 태도에 대하여 반성하기는커녕 정당화하기만 한다. 역사의 흐름을 올바른 방향으로 개선하려 하기보다는 그 흐름에 안주함으로써 만족하는 반역사(歷史)적, 이기적 인간의 전형이다. 따라서, 작가는 이러한 주인공을 지칭할 때 ‘박사’라는 호칭을 붙여 적다안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 의도는 다분히 냉소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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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꺼삐딴’의 의미
‘꺼삐딴’은 ‘captain’의 러시아식 발음이다. 스텐코프 소좌가 이인국 박사의 손을 부서져라 쥐면서 ‘꺼삐딴 리’라고 외쳤을 때, 그것을 우리말로 옮기면 “끝내주느만, 이박사”쯤 될 것이다. 따라서 ‘꺼삐딴’의 일차 의미는 ‘최고봉(最高峰)’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능력을 개인적 영달을 위해서만 사용한다. 그러므로 ‘꺼삐딴’의 이차 의미, 곧 냉소적 의미는 ‘최고의 기회주의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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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작가는 계속 ‘박사’ 호칭을 쓸까?
이인국 박사의 행태는 ‘박사’받지 않다. 그런데 작가는 그 호칭을 즐겨 쓰고 있으며, 대명사 ‘그’로 처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의도적인 듯 ‘이인국 박사’라고 명명한다. 이는 ‘박사’로 대변되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반(反)역사적 행위나 위선적 태도를 풍자하려는 작가 정신의 반영일 것이다.
* 과거 회상의 매개체
‘회중시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국 대학 졸업 때 받은, 뒷면에 자기 이름이 새겨진,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의 표상이다. 해방 후 소련군 병사에게 뺏기는 순간 그는 ‘죽음과 시계……’라고 뇌까린다. 시계의 상실은 죽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텐코프에 의해 시계가 돌아온 순간 그는 환호작약한다. 민족 반역자로 ‘사형’도 예상했던 그가 죽다가 살아나면서 시계도 돌아왔던 것이다.
또한 ‘회중시계’는 소설 초반부의 졸업식 날을 떠올리는 회상의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 전체를 통하여 ‘회중시계’가 ‘회상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회상의 매개체는 ‘석간신문’이다. 미 대사관으로 가는 차 속에서 그는 ‘북한 소련 유학생, 서독으로 탈출’ 기사에 골몰한다. 아들이 10여 년 전에 모스크바로 유학 가서 생사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석간신문의 대문자 ‘소련’을 계기로 ‘과거’ 광복 직후 소련군 진주를, 다시 ‘과거’ 스텐코프 소좌를 떠올리고, 소설 마지막에 가서 신문을 접으면서 ‘현재’, 소련이 아닌 미국편에 선다. 이 소설 대부분을 차지하는 과거 회상은 ‘미 대사관으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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