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시대 - 박경리 |
줄거리 한국 동란 와중에 남편과 사별한 진영은 한 점 혈육인 아들 문수마저 엑스레이도 찍지 않고 약도 준비하지 않은 의사의 무관심 때문에 잃어버리고 만다. 아들 문수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은 그녀로 하여금 사회를 불신하게 만든다. 진영의 눈에 비친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폐결핵인 진영이 찾아간 병원은 한결같이 엉터리였다. Y병원은 주사약의 분량을 속였고 S병원은 건달꾼이 의사 노릇을 하였고 H병원은 빈 외제 약병을 내다 팔았다. 거리에는 가짜 주사약이 난무하고 있었다.
집에 찾아온 여승은 시주로 받아 온 쌀을 팔려고 했고, 문수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찾은 절은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대접을 달리하는 타락한 곳이었다. 신앙이 깊어 의지하려 했던 갈월동 아주머니에게 돈을 떼이게 되는 사건, 그러한 아주머니를 상대로 종교를 빌미삼아 사기 행각 을 벌인 대학생 '상배', 신발을 들고 들어가야만 하는 교회 등, 불신 시대의 문제들은 진영을 지치게 만든다.
결국, 진영은 자신의 삶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마지막 결심을 하게 되는데, 아들 문수의 영혼을 위해 절에 맡겨 두었던 아들의 위패를 찾아 태우게 된다. 왜냐 하면, 불심의 깊이를 금전으로 측량하는 절에서는 문수의 영혼이 편안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들의 위패를 태움으로써 자신을 억압하는 불신 시대의 모든 조건들을 불살라 버리자는 심산인 것이다. 진영은 마음속으로 이 시대를 불신 시대라 규정 짓고, 이 사회에 항거하자는 다짐을 하며 산을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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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 시간(9․28 수복 직후의 혼란기). 공간(1950년대 서울). 공간적 배경은 전후 부조리와 위선에 둘 러싸인 서울의 현실적 공간이며, 시간적 배경은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이 뒤얽힌 채 인간들 의 삶이 불신으로 나타나는 일상적 시간이다.
성격 : (혼란기 사회의 부정에 대한) 고발적 비판적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등장인물 :
① 진영(眞英) - 6.25 사변 당시 남편을 잃고 남아 있던 아들 하나마저도 병원측의 무성의와 과실로 잃어버린 여인. 신학문을 배운 지식 여성으로서 세상의 이치를 하나씩 깨달을수록 전후의 현실이 부조리하고 부패하기 짝이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지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죽은 아이에 대한 끝없는 연민과 자신의 삶에 대한 구차스러움을 느낀다. 고독과 그리움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불신의 적대감을 보이나 결국 삶에의 강렬한 의욕을 되찾는 인물.
② 어머니 - 남편과 외아들마저 잃고 오직 딸 진영이 하나만을 의지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여 인. 삶의 고난과 불행을 종교에 의존함
③ 갈월동 아주머니 -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고 진영네의 불행에 대해서 위로하고 걱정하는 일을 잊 지 않는 자상함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계주 노릇을 하면서 남의 돈을 떼어 먹고 자기의 실속은 조금도 빠뜨리지 않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여승 : 시주로 받아 온 쌀을 팔려고 하는 인물. 문수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찾은 절은 돈의 많고 적 음에 따라 대접을 달리하는 타락한 곳이다. 돈을 밝히는 타락한 승려.
상배, 의사 : 사기를 치거나, 성의 있는 치료를 하지 않는, 진영이 사회를 불신하게끔 만드는 부정 적 인물들.
구성
발단 : 진영의 남편이 9.28 수복 전야에 폭사하고 아들은 의사의 무성의한 진료로 아홉 살 때 죽음.
전개 : 친척 아주머니의 권유로 성당에 감. 진실성보다 세속성을 느끼고 발길을 끊음.
절정 : 폐결핵의 진영. 병원에 가지만 함량 미달의 주사약 처치 등 병원의 부조리에 환멸을 느낌
위기 : 염불보다 잿밥에 신경 쓰는 절간에 환멸. 친척 아주어니의 부당한 처사에 분노
결말 : 아들의 사진과 위패를 불태워 버리고 타락한 세상에 저항할 것을 마음 속으로 다짐.
주제 : 혼란기의 부정적 사회에 대한 분노와 고발./전후 사회의 타락한 현실 비판/전후 사회의 타락한 현실 비판과 불신의 참다운 의미.
출전 : <현대문학>(1975)
‣ 이해와 감상
1957년 '현대 문학'에 발표된 단편 소설. 9. 28 수복 전야에 유엔군인 남편을 잃은 진영이라는 여성의 힘겨운 삶이 중심 내용이다. 의사의 무관심 때문에 외아들 문수가 죽고, 중들은 돈을 좇아 종교를 팔고, 병원에서는 치료약의 함량을 속이며, 곳곳에 사기꾼들이 득실거리는 현실. 진영은 외로움과 무기력함을 느끼며 이 시대를 불신한다. 그러나 아들의 위패를 불태우는 행위로써 현실의 폭력성에 대결코자 한다. 이 작품의 문학적 성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옹호하는 관점과 비판적 관점이 모두 가능하다. 우선 전자의 경우, ‘불신 시대’라는 제목이 밝혀 주듯이, 주인공 진영을 둘러싼 사회 현실은 모두 그녀를 기만하고 배신한다. 특히, 그 지독한 배금주의는 그녀로 하여금 생존 자체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끝내는 아들의 위패를 태우게 되는데, 아마 그녀는 아들의 영혼이 이 썩어빠진 세상에서 영원히 떠나기를 바랐기에 그런 매몰찬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 때 이렇게 중얼거린다. - “그렇지, 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지.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그녀에게 이 위패를 태우는 범상치 않은 행위는 쓰라린 과거를 의식 속에서 지우는, 그리하여 새로운 면모로 세상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비록 실천적 행위를 통하여 시대 상황을 부정하고 거부하며 해결책을 찾으려는 모습은 보여 주지 못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 내에서 내면적으로 대결 의지를 다진다는 점에서 한 여인의 한계와 상황 극복의 결의를 동시에 읽을 수 있다.
다만, 이 소설에서 아쉬운 점은 여러 가지 사건과 상황 전개가 주인공 진영 개인의 체험과 의식으로만 제시된다는 점이다. 환경과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피해 의식과 감상주의에 치우쳐 있어서 소설의 마지막 독백, ‘그렇지, 내게는 아직……’ 대목은 개인척 차원의 자기 설득이요 다짐일 뿐 공감대의 형성에는 한계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여기서 관점의 차이를 엿볼 수도 있다. 6․25를 겪고 난 우리 사회의 정신상황은 문자 그대로 폐허였다. 물론 여기서는 인간의 정신 영역을 지배하는 가장 큰 분야인 종교조차 그 때 우리에게는 구원이 되지 못했음을 알리려는 의도가 바닥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소설의 마지막은 “-그렇지 , 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지.”로 끝나는 상황에서 이것으로 우리는 끝내 생 자체를 포기하지 못하는 작가의 정신 자세를 읽게 된다.
1957년 박경리의 「불신시대」의 출현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가 개인의 재능을 명시해 준 의미도 있지만, 한국 소설계의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새롭게 대두된 서사문학의 중요한 변모를 이 작품이 처음 집약적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서사문학이 더 이상 영웅주의적 자아도취에서 벗어나 보통 사람이 사회와 자기를 정밀하게 저울질하여 그에 대한 성실한 성찰을 기반으로 하는 내용을 담는, 즉 영웅의 이야기를 벗어나 새로운 일상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큰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박경리의 소설 중에서, 여자 주인공이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었다는 내용과 아들이 사망하고 홀어머니, 외동딸과 살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는 「불신시대」말고도 「암흑시대」,「흑흑백백」,「영주와 고양이」등이 있다.
50년대 박경리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은 인물 성격화의 단일성이다. 작품 속의 대개의 주인공들이 일관화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삶의 어떠한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는, 지식 저변에서 샘솟는 자존심과 미모를 지닌, 젊은 과부의 삶이 그것이다. 그 자존심이 때에 따라서는 결벽증으로 나타날 정도이다. 각 작품마다 주변 환경도 비슷하게 설정된다. 가족관계에 있어서도 친정어머니와 어린 딸과 아들이 젊은 과부에 딸려 있는데, 대개 어린 자식이 죽었거나 죽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언뜻 보아 당대의 일련의 작품들이 연작물로 착각될 정도이다.
작가의 「세월」이라는 수필 형식의 글을 보면 「불신시대」의 진영이가 바로 작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작가의 직접적인 생활 체험과 그 제재가 유사하여 사소설(私小說)이라 불리고, 작가가 전쟁 이후의 삶의 고통을 객관화시키지 못한 채 자신의 사사로운 삶의 형태 안에 머물렀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박경리는 ‘일찍이 자기를 떠난 작가가 있었던가? 작가는 자기를 통해 인간을 보지 않는가?’라는 반론을 제기하면서, 삶과 소설을 동일선상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그 통합의 근거를 생명 문제에서 찾는다. 문학을 인간 삶의 단순한 잉여물이나 기능 수단이 아니라, 삶의 진정한 근원, 즉 생명을 확인해 가는 기쁨으로 보았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과 소외의 문제를 중시했던 작가의 초기 작품들, 즉 1955년에서 1959년까지 씌어 진 소설들을 ‘전후 소설’로 온당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 보충 학습
주인공이 처한 상황 |
주인공이 만난 사람들의 태도, 가치관 |
주인공의 선택 |
주인공의 의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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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
․ 무관심, 무책임 ․ 주사약의 양을 속임 ․ 무면허 의사가 진료 |
아들의 사진과 위패를 불태움 |
부조리한 현실에 항거할 수 있다는 내적 의지 다짐 | ||||||
교인들 |
․ 진실성보다 세속적 형태 ․ 상배, 위선적 영세 ․ 갈월동 아주머니, 계원들 돈으로 사채놀이 | |||||||||
중등 |
․ 돈의 액수에 따라 추모의 농도가 달라짐 -“당신네들 같으면 중이 먹고 살갔수.” | |||||||||
1950년 6 ․ 2 전쟁 ~ 서울 ~ 1956년 경 |
● 불신 ⇒ 현실 고발
▲ 전쟁의 비극성 : * 인민군 소년병의 죽음
* 남편의 죽음
* 피난 길에서 목격한 부모 잃은 아이
▲ 문수의 죽음 : 병원 의사의 무관심으로 인한 죽음
▲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 :
* 의사가 아닌 동네 건달이 버젓이 의료 행위를 함
* 서투른 간호사가 마이신을 채 녹이지도 않고 주사를 놓으려 하는 무지
* 외제 빈 약병에 가짜 약을 담아 유통시킴
▲ 철저한 배금주의
* 성당에서 신발을 잃을까봐 신발을 주머니에 넣는 일
* 연금 주머니를 돌리는 일
* 됫박 싸움을 벌이는 여승
* 서장 부인이란 지위와 금력 앞에 문수의 영혼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는 중들의 태도
◎ 심화학습1
이 소설은 ‘극한 상황’ 속에서 전개된다. 살육과 파괴의 전쟁, 그 후유증을 심각하게 앓을 수밖에 없는 전후 시대라는 점, 주인공은 대학까지 졸업한 인텔리 여성이지만 남편, 자식, 직장, 건강을 잃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너지는 존재라는 점, 건달패가 의사인 양 행세하고, 금전적 이해관계 때문에 영세를 받고, 돈의 액수에 따라 염불하는 목소리에 차이가 있는 등, 주인공이 만난 사람들의 행태 역시 비인간적인 군상이라는 점 등이 그러하다. 연극으로 치면 무대와 주인공과 보조배역들이 거의 극한적 성격을 지닌다. 이렇게 피폐하고 비문화적인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선택하는 삶의 방향 역시 극단적이다. 아들의 사진과 위패를 불태움으로써 죽은 자식의 ‘존재’를 불태운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는 자신의 ‘존재’를 자각한다. 결국 주인공은 현실적인 것들을 모두 잃고 오직 하나만 건진다. - 자존심. 작가 박경리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핵심이 바로 그 자존심, 또는 인간의 존엄성이며 그것은 ‘토지’의 주인공 ‘서희’에 의해 다시 확인된다.
◎ 심화학습2
진영, 그녀는 ‘프랑스 문학의 전망’이라는 일본 책을 집어든다. 그녀는 인텔리 여성이며 9.28 수복 전야에 죽은 남편을 회상한다. 그리고 6년 후, 아들이 뇌수술을 받다 죽는다. 그리고 자신은 폐결핵 환자이며 직장도 없다. 곁에 있는 것이 무의미하게 목숨만 이어간다고 그녀가 안타깝게 느끼는 어머니뿐이다. 따라서 그녀는 정신적, 육체적 중증 환자다. 그런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적 구원과 육체적 진료다. 그것은 종교와 병원에서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이 소설의 중심 배경으로 두 곳을 배치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곳이고, 병원은 질병을 치료하여 고통을 벗어나게 하는 곳이므로 둘 다 인간을 구원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가 타락하더라도 인간의 영혼과 생명을 다루는 종교와 병원만큼은 참된 진실과 믿음이 남아 있어야 할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보이는 종교와 병원은 그렇지가 못하다. 영혼의 구원보다는 영혼의 구원을 빌미삼아 물질을 얻는데 관심을 기울이는 종교,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보다는 생명을 담보로 돈을 벌고자 하는 병원인 것이다. 이런 종교와 병원의 모습을 통해, 독자는 ‘양심의 마지막 보루인 종교와 병원까지 타락할 정도이니 사회 전반의 비도덕성이야 말해 무엇하겠느냐’는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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