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곡 - 정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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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속세에 묻혀 사는 사람들아, 이 나의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가? / 옛 사람의 풍류(멋)를 따르겠는가, 못 따르겠는가? / 세상의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 나만 한 사람이 많지만은, / 산림에 묻혀 있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른단 말인가? / 초가삼간을 맑은 시냇가 앞에 지어 놓고, /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한 숲 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주인이 되어 있도다.

㉯ 엊그제 겨울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 복숭아꽃 살구꽃은 석양 속에 피어 있고, / 푸른 버드나무와 향기로운 풀은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서 푸르도다. / (조물주가) 칼로 재단해 내었는가? 붓으로 그려 내었는가? / 조물주의 신기한 재주가 사물마다 야단스럽구나. / 숲 속에 우는 새는 봄기운을 끝내 이기지 못해 / 소리마다 교태를 부리는 모습이로다.

㉰ 물아일체이거늘, (자연과 나의) 흥이야 다르겠는가 / 사립문 주변을 걸어 보기도 하고, 정자에 앉아 보기도 하니, / 천천히 거닐며 나직이 시를 읊조려, 산 속의 하루가 적적한데, / 한가로움 속의 참된 즐거움을 아는 이 없이 나 혼자로구나.

㉱ 여보게 이웃 사람들아, 산수 구경이나 가자꾸나. / 산책은 오늘 하고, 냇물에 가서 목욕하는 일은 내일 하세. / 아침에는 산에서 나물을 캐고, 저녁 때는 낚시질하세.

㉲ 이제 막 발효하여 익은 술을 갈포로 만든 두건으로 걸러 놓고, / 꽃나무 가지 꺾어서 잔 수를 세며 먹으리라. / 화창한 봄바람이 문득 불어 푸른 물결을 건너오니, / 맑은 향기는 술잔에 가득히 담기고,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 / 술동이가 비었거든 나에게 알리어라. / 아이를 시켜 술집에 술이 있는지를 물어서. / (술을 사다가) 어른은 지팡이를 짚고 아이는 술동이를 메고, /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서 시냇가에 혼자 앉아, / 맑은 모래 위로 흐르는 깨끗한 물에 잔을 씻어 부어 들고, 맑은 시냇물을 굽어보니 / 떠내려 오는 것이 복숭아꽃이로구나. / 무릉도원이 가깝구나, 저 들이 무릉도원인가?

㉳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에서 진달래꽃을 붙들고, / 산봉우리 위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 보니, / 수많은 촌락이 여기저기 널려 있네. / 안개와 노을과 빛나는 햇살은 수놓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구나. / 엊그제까지 거뭇거뭇하던 들판에 봄빛이 넘쳐 흐르는구나.

㉴ 공리와 명예도 나를 꺼리고, 부귀도 나를 꺼리니, / 아름다운 자연 외에 그 어떤 벗이 있겠는가? / 누추한 곳에서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헛된 생각을 아니 하네. / 아무튼 한평생 즐겁게 지내는 일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겠는가?


■ 핵심 정리

• 연대 : 조선 전기(성종 때)

• 성격 : 주정적, 서정적, 묘사적, 예찬적

• 표현 : 설의법, 대구법, 직유법, 의인법

• 제재 : 봄날의 경치

• 주제 : 봄의 완상(玩賞)과 안빈낙도(安貧樂道)

• 특징 : 

 ① 감정 이입을 통해 주제를 부각시킴.

 ② 의인법, 대구법, 직유법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사용하여 정서를 드러냄.

 ③ 시적 화자의 시선에 따라 시상을 전개함.

• 의의 : 

 ① 조선 시대 사대부 가사의 효시

 ② 강호가도를 노래한 가사의 첫 작품


■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국문학상 최초의 가사 문학으로, 속세를 떠나 자연에 몰입하여 봄을 완상하고 인생을 즐기는 지극히 낙천적인 성격의 노래이다. 자연 속에 숨어 지내는 선비의 안빈낙도(安貧樂道)와 자연물과 시적 화자가 조화를 이루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가 잘 나타나 있다. 전체 구성은 ‘서사 - 본사 - 결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간모옥’으로 대표되는 좁은 공간에서 ‘들판’, ‘산 위’라는 넓은 공간으로 공간이 확장되는 형태를 취하면서 시선의 이동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상춘곡’은 조선조 양반 가사의 첫 작품인 동시에 대표적인 작품이다. 고려 말 나옹 화상의 ‘서왕가’와 ‘승원가’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최초의 가사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정치를 떠나 산수 속에서 자연을 벗삼아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즐기겠다는 작가의 지극히 낙천적인 생활 철학과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자연관이 잘 드러나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매우 사실적인 표현과 함께 의인, 대구, 직유, 설의 등의 다양한 표현 기법과 옛 사람들의 고사(故事)를 풍부하게 인용함으로써 작품을 유려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정극인 당대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휠씬 후대에 기록된 것이어서 창작 당시의 작품이 그대로 담아져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정극인이 창작한 작품이 가사의 성숙기에 이를 무렵에 세련되게 다듬어져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 윤희재, 전공국어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시적 화자의 가치관이 잘 드러나 있는 부분  

• 物我一體(물아일체)어니 興(흥)이 다소냐

• 淸香(청향)은 잔에 지고, 落紅(낙홍)은 옷새 진다

• 淸風明月(청풍명월) 外(외)예 엇던 벗이 잇올고

▶ 위에 제시된 구절은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사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나타낸 부분으로, 자연 친화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봄의 아름다운 경치를 완상하며 자연에 묻혀 사는 즐거움과 풍류를 노래하는 한편, 물아일체(物我一體)와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에 만족감을 표출하고 있다.


2. ‘상춘곡’에 나타난 자연관

  ‘자연’은 사대부 문학의 가장 중요한 소재 가운데 하나이다. 현실 정치적인 가치관을 지향하는 사대부에게 ‘자연’이란 ‘현실 · 속세’와 대비되는 공간으로서, 현실 정치에 참여할 수 없을 때 물러나 자신을 수양하고 학문을 닦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현실정치에서 자신의 이상과 포부를 실현할 조건이 형성된다면 언제든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일시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대부에게 ‘자연’은 언제든 갈 수도 있고 나올 수도 있는 공간이다. 이런 점을 근거로 할 때, ‘상춘곡’에서 ‘자연’은 물아일체(物我一體)와 강호가도(江湖歌道)의 공간이자, 때를 기다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권력이든 명예든 물질이든 일체의 외물(外物)에 얽매이지 않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세계로서 ‘자연’을 설정한 도가 사상과는 관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상춘곡’의 시적 화자는 자신이 머무는 ‘무릉도원’을 세상 사람들이 머무는 ‘홍진’과 완전히 분리시키지 않고 이웃들에게 산수 구경을 가자고 청하는 것이다.


3. 주객전도식 표현

  행위의 주체와 객체를 바꾸어 표현함으로써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우다’는 ‘꺼리다’라는 의미를 갖는데, ‘공명도 날 우고, 부귀도 날 우니’는 표면적으로는 ‘공명’과 ‘부귀’가 시적 화자를 꺼린다는 내용이 된다. 그러나 이는 부귀와 공명을 꺼린다는 시적 화자의 의도를 역전시켜 표현함으로써 의미를 강조한 구절이다.


4. 상춘곡에 대한 평가

 이 작품은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에 묻혀 사는 은퇴한 관료의 생활을 읊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서사에는 화자의 대자연의 주인된 기쁨과 여유 있는 생활 태도가 잘 나타나 있으며, 또한 세속에 허덕이는 속류(俗流)를 비웃듯 청아한 뜻이 낙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본사에서는 우리는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우아미'가 창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정병욱)

 산림처사로서의 삶을 다루는 은일가사는 부귀와 공명을 꺼리니 청풍이나 명월 아닌 다른 벗이 없다고 해서 내심을 드러낸다. 즉, 밀려나서 은거를 하는 것이 바라지 않던 바일수록 자신이 신선인 양 자부하고 세속적 먼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엾다고 해야 심리적 균형이 맞는다. (윤재호)


■ 작가 소개

정극인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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