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앞부분 생략>
녹색 창과 붉은 문의 여염집은 오색이 영롱하고,
화려한 집과 채색한 난간의 시가지는 만물이 번화하다.
집집마다 만주 사람들은 길에 나와 구경하니,
옷차림이 괴이하여 처음 보기에 놀랍도다.
머리는 앞을 깎아 뒤만 땋아 늘어뜨려
당사실로 댕기를 드리고 마래기라는 모자를 눌러 쓰며,
일 년 삼백 육십 일에 양치질 한 번도 아니하여
이빨은 황금빛이요 손톱은 다섯 치나 된다.
검은 빛의 저고리는 깃이 없이 지었으되,
옷고름은 아니 달고 단추 달아 입었으며,
검푸른 바지와 짙은 남빛 속옷 허리 띠로 눌러 매고,
두 다리에 행전 모양으로 맨 것을 타오구라 이름 하여,
발목에서 오금까지 가뜬하게 들이끼우고
깃 없는 푸른 두루마기 단추가 여럿이요,
좁은 소매가 손등을 덮어 손이 겨우 드나들고,
두루마기 위에 덧저고리 입고 무릎 위에는 슬갑이라. <중략>
묵을 곳이라고 찾아가니 집 제도가 우습도다.
보 다섯 줄로 된 집 두 칸 반에 벽돌을 곱게 깔고,
반 칸식 캉이라는 걸 지어 좌우로 마주보게 하니,
캉의 모양이 어떻더냐, 캉의 제도를 못 보았거든
우리 나라 부뚜막이 그와 거의 흡사하여
그 밑에 구들 놓아 불을 땔 수 있게 마련하고
그 위에 자리 펴고 밤이면 누워 자며,
낮이면 손님 접대 걸터앉기에 매우 좋고,
기름칠을 한 완자창과 회를 바른 벽돌담은
미천(微賤)한 오랑캐들도 집치레가 지나치구나.
<후략>
■ 핵심 정리
• 연대 : 고종 3년(1866년)
• 갈래 : 장편기행가사, 후기 가사, 양반 가사, 사행 가사
• 성격 : 객관적, 사실적, 서사적, 비판적, 묘사적
• 제재 : 청나라 연경을 다녀온 견문과 여정
• 의의 : 일동자유가와 더불어 기행 가사의 쌍벽을 이룸
• 구성 :
(1) 송객정에서의 전별 잔치: 왕명을 받아 떠나는 관원의 자부심과 이별의 감회
(2) 압록강 건너기: 행역 걱정을 많이 함.
(3) 만주에서의 여정, 감회
- 만주에서의 적막한 모습 묘사
- 초라한 점심 식사
- 온정평에서 노숙하게 됨.
(4) 봉황성의 호인(胡人)들 모습과 의복
- 봉황성의 엄격한 검문
- 봉황성의 호인들: 호인 문화에 대한 경멸, 복장, 두루마기, 변발 등에 대한 언급
- 봉황성의 여인 모습: 청의 문화에 대해서는 경멸하지만, 명나라 풍습인 전족 제도가 남아 있음을 보고 가치 있게 생각함.
- 봉황성의 아이들 모습
(5) 호인들의 생활 풍속
- 흡연 풍습과 주택 문화
- 식생활 풍습
- 가축 기르는 모습: 실용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봄.
- 육아 풍속: 실용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봄.
- 농사 풍속: 실용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봄.
- 베짜기: 실용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봄.
• 주제 : 청나라 연경을 다녀온 견문과 여정
• 특징 :
① 치밀한 관찰력으로 대상을 자세히 묘사함.
② 고사 성어나 한시 구절보다 소박한 표현이 사용됨.
③ 존명 배청(尊命拜聽, 명나라를 높이고 청나라를 배척함) 의식을 드러냄.
④ 이국(異國)의 문물과 풍속, 인물 등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임.
■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홍순학이 25세 때 고종의 가례책봉 주청사의 서장관으로 연경(燕京:지금의 북경)에 다녀와서 쓴 기행 가사이다. 여정에 따라 청나라의 문물과 풍속을 예리한 관찰력과 사실적이고 비판적인 필치로 그려 낸, 기행 가사의 최상급에 속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호란의 국치에 대한 비분강개와 함께 장부의 호연지기가 나타나 있어, 전란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청나라에 대한 민족적 감정이 여전했음을 엿보게 한다. 여기에다 작가 또한 청나라를 오랑캐로 보는 화이론(華夷論)의 태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생각하면, 이 글의 필치가 청나라의 문물을 깔보고 비웃으려고 하는 태도에서 점차 그 실용성을 인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는 태도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작가의 객관적이고 현실주의적인 태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총 3924구의 장편 가사로서, 손으로 베껴 쓴 필사본(筆寫本)으로 전한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25세의 젊은 선비였던 홍순학은 연로한 김인겸이 떠날 때 가족들을 생각하며 이런저런 걱정에 빠졌던 경우와는 달리, 소년 공명의 자부심과 기개가 있었다. 그러나 그 연행의 길은 서울을 떠나 고양, 파주, 임진강, 장단, 송도, 평산, 곡산, 황주, 평양, 가산, 정주를 거쳐 의주까지 국내서만도 근 한 달이 걸린 여정이었다. 압록강을 건너면서 비로소 “허박하고 약한 기질 만 리 행역 걱정일세.” 하고 가족의 곁을 떠난 외로움과 나라 생각에 무거운 나그네의 심회를 말해 주고 있다.
나라 안에서 융숭했던 대접과는 달리, 무인지경인 만주 벌판에서 군막 생활의 괴로움과, 봉황성에서 만난 남녀 호인들의 기괴한 옷차림과 그들의 주식 생활 등 낯선 이국의 풍물을 소상히 관찰하고, 그의 특유의 익살로 표현하고 있다.
청석령을 넘으며 효종이 심양으로 잡혀 간 치욕을 통분해하기도 하고, 요동 칠백 리에서 사내의 호기를 뽐내기도 했다. 이르는 곳마다 고적을 찾아 상고하며 북경에 도달한 것은 석 달만인 6월 6일. “자문을 받들어서 상서에게 봉전하고 삼 사신 꿇어앉아 아홉 번 고두하여 예필 후 돌아오니 사신 할 일 다 하였네.” 긴 행역에 비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북경의 문루, 절, 고적을 구경하고, 시전을 두루 살피고, 환희 요술을 참관, 인사를 방문하여 인정을 교환하였던 일 등 당시 저쪽과 이쪽의 정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눈깔은 움쑥하고 콧마루는 우뚝하며, 머리털은 빨간 것이 곱슬곱슬 양모 같고, 키꼴은 팔 척 장신, 의복도 괴이하다. 쓴 것은 무엇인지 우뚝한 전립 같고, 입은 것은 어찌하여 두 다리가 팽팽하냐? 계집년들 볼작시면 더구나 흉괴하다. 퉁퉁하고 커다란 년 살빛은 푸르스름 …… 새끼 놈들 볼 만하다. 사오륙 세 먹은 것이 다팔다팔 빨간 머리 샛노란 둥근 눈깔, 원숭이 새끼들과 천연히도 흡사하다.”
북경 길가에서 만난, 처음 보는 서양인을 표현한 대목에서도 그의 익살과 조선 선비의 오기를 볼 수 있다.
7월 18일 돌아서서 8월 23일 도착, 왕께 복명하고 집에 돌아오기까지 반 년에 걸친 연행 기간 중 그가 보고, 느끼고, 접한 바를 3800여 구에 담아 노래로 엮었다.
사대 사행의 일원으로 수행하며 배타 천시의 오기가 넘친 청년 선비, 그의 눈에 비친 이국의 풍물과 경개를 자상하고 흥미롭게 기록한 ‘연행가’는 그 때 그 역사와 인정을 상고하기에 귀중한 자료다.
자료 출처 : 이석래, ‘교주 기행가사집’
■ 심화 내용 연구
1. 갈등의 대청(對淸) 의식
이 작품에서 “일 년 삼백육십 일에 양치 한 번 아니하여 이빨은 황금이요, 손톱은 다섯 치라.”고 한 것은 청나라 사람을 멸시한 예라고 하겠다.
청나라 궁궐에 들어가서 황제의 동가를 보면서 “용봉지자 천일지표 어떠하신 천안인고?”라고 기대감을 표명한 다음, “천하의 제일인이 호복한 이 자란 말가?” 하고 실망을 나타낸다. 여기서 우리는 지은이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대청 의식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실망감의 표현은 지은이의 마음 속에 일고 있는 일종의 갈등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정공수, 황운곡, 동문환, 방정여, 방범염, 왕조제, 황현인 등을 만나 보고, 그 인물들의 준수한 기상과 고결한 성품을 찬양한 다음, “모두 다 대명 적에 명문 거족 후예로서, 마지못해 삭발하고 호인에게 벼슬하나, 의관이 수 통함은 분한 마음 맺혔구나. 예의의관 조선 사람 형제같이 반긴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데에서는, 명나라 후예 곧 한인과 청나라 사람 곧 호인을 구별하여, 전자를 망국민이기는 하지만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강개지심을 가진 문화와 예의의 선비들이라고 생각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데 반하여, 후자는 비록 천자라 하더라도 문화와 예의 풍속에 있어서는 미개한 야만으로 멸시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지은이는 비록 호인이라 하더라도 좋은 풍습, 부지런한 처신들에 관해서는 거짓 없이 받아들이기도 하고, 또 정확하게 평가하는 객관성을 가지기도 하였다. 육아법에 관한 묘사나 , 농사와 길쌈에 부지런함을 노래한 것이 그 예가 된다.
자료 출처 : 최강현, ‘한국 기행문학 연구’
■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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