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회고적, 성찰적, 비판적
• 어조 : 체념적인 어조, 독백형식의 절제되고 단아한 어조
• 제재 : 강물
• 주제 : 궁핍한 도시 노동자의 삶의 비애
• 특징 :
① 한과 비애가 담긴 절제된 어조로 노래함.
② 자연물에 상징성을 부여하여 삶과 결부시킴.
③ 시간의 변화에 따라 시상을 전개함.
• 구성 :
1~4행 :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 강물에서 발견한 인생의 의미
5~8행 :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 삶의 무력감과 실의
9~12행 :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구나 ;; 암담한 노동의 현실 인식
13~16행 :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암담한 현실에 대한 체념
■ 작품 해설 1
이 시는 1970년대 산업화, 도시화로 소외된 도시 노동자의 비애를 차분하고 절제된 어조로 노래한 작품이다. 도시 노동자인 시적 화자의 삶을 자연물인 ‘물’에 빗대어 형상화함으로써 강물이 흘러 깊어 가듯이 노동자의 힘겨운 삶도 흘러 생활고에 지치고 비애가 깊어감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썩은 물에 뜨는 ‘달’과도 동일시하여 반복되는 노동자의 삶을 드러내고 있다. 시적 화자는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강물을 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지만,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돌아갈 뿐이다’에서 알 수 있듯이 무력감에 빠져 체념하고 있다. 이처럼 이 시는 화자가 자연물인 ‘저문 강’, '달’과 동일시하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암담한 현실에 체념하며 순응하는 노동자를 통해 시대 상황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민중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1970년대는 경제 개발에 따른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농촌 인구가 도시로 집중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농촌 사회가 붕괴되고 도시에 몰려든 사람들 대부분이 저임금 노동자, 도시 빈민층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시는 1970년대 산업화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소외된 도시 노동자의 삶의 비애를 차분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처지를 ‘흐르는 강물’과 ‘썩은 강물에 뜬 달’에 비유하고 있다. ‘강물’과 ‘달’은 일정한 형태를 지니지 않고 변화하지만, 그것은 항상 반복될 뿐이다. 이 시의 시적 화자 역시 하루하루 희망이 없는 반복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이다. 강물이 흘러가고, 달의 모습이 바뀌듯, 자신도 어느 새 중년의 희망 없는 노동자로 변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비애를 안고 다시 또 일상 속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디딤돌, ‘현대시 필수 아이템’ 참고
■ 심화 내용 연구
1. 당시의 시대 상황과 관련한 시의 의미
이 시의 시대적 배경인 1970년대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목표로 경제 개발이 가속화된 시기로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집중되었다. 도시로 몰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업화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도시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산업화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되어 흐르는 물이나 썩은 물에 뜨는 달처럼 반복되는 삶을 사는 시적 화자는 산업화 시대에 고된 노동과 비애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민중을 형상화한 것이다. 작가는 도시 노동자로 전락하여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물에 삽도 씻고 슬픔도 떠다 버리는 시적 화자의 삶을 통하여 도시 노동자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힘겨운 삶의 현실에서 불만을 토로하거나 절규하기보다는 차분하고 절제된 어조로 민중들이 처한 삶의 현실을 드러내어 가난한 노동자의 비애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 강물, 달, 화자의 공통적 속성
2행과 13행에서 반복되는 ‘우리가 저와 같아서’라는 구절을 통하여 화자는 흐르는 ‘강물’과 샛강 썩은 물에 뜨는 ‘달’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다. 강물과 달은 일정한 모습을 지니지 않았다는 점과 그 변화가 비주체적이고 반복적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인 속성을 갖는다. 화자의 삶 또한 노동자로서 정체성이 없고, 유동적이며 반복적이라는 점에서 ‘강물’, '달’과 공통적인 속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3. ‘물’의 상징적 의미
‘물’은 ‘흐르는 물’이기에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스스로 흐름을 통제할 수 없다. 이 시의 화자도 어느새 중년이 되어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반복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물’은 시적 화자와 동일시되는 대상이다.
■ 작가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