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계 - 설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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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화왕(花王)께서 처음 이 세상에 나왔을 때, 향기로운 동산에 심고, 푸른 휘장으로 둘러싸 보호하였는데, 삼춘가절(三春佳節)을 맞아 예쁜 꽃을 피우니, 온갖 꽃보다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여러 꽃이 다투어 화왕을 뵈러 왔다. 깊고 그윽한 골짜기의 맑은 정기를 타고난 탐스러운 꽃들이 다투어 모여 왔다.

▶화왕의 내력

  문득 한 가인(佳人)이 앞으로 나왔다. 붉은 얼굴에 옥 같은 이와 신선하고 탐스러운 감색 나들이 옷을 입고 아장거리는 무희(舞姬)처럼 얌전하게 화왕에게 아뢰었다.

  “이 몸은 백설의 모래사장을 밟고,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바라보며 자라났습니다. 봄비가 내릴 때는 목욕하여 몸의 먼지를 씻었고, 상쾌하고 맑은 바람 속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면서 지냈습니다. 이름은 장미라고 합니다. 임금님의 높으신 덕을 듣고, 꽃다운 침소에 그윽한 향기를 더하여 모시고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께서 이 몸을 받아 주실는지요?”

▶화왕을 유혹하는 장미

  이때 베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두르고, 손에는 지팡이, 머리는 백발을 한 장부 하나가 둔중한 걸음으로 나와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이 몸은 서울 밖 한길 옆에 사는 백두옹(白頭翁)입니다. 아래로는 창망한 들판을 내려다보고, 위로는 우뚝 솟은 산 경치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옵건대, 좌우에서 보살피는 신하는 고량(膏梁)과 향기로운 차와 술로 수라상을 받들어 임금님의 식성을 흡족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해 드리고 있사옵니다. 또 고리짝에 저장해 둔 양약(良藥)으로 임금님의 원기를 돕고, 금석(金石)의 극약(劇藥)으로써 임금님 몸에 있는 독을 제거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이르기를, ‘비록 사마(絲藦)가 있어도 군자 된 자는 관괴(管蒯)라고 해서 버리는 일이 없고, 부족에 대비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임금님께서도 이러한 뜻을 가지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화왕에게 경계를 권하는 백두옹

  한 신하가 화왕께 아뢰었다.

  “두 사람이 왔는데, 임금님께서는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리시겠습니까?”

  화왕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장부의 말도 도리가 있기는 하나, 그러나 가인을 얻기 어려우니 이를 어찌할꼬?”

  그러자 장부가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제가 온 것은 임금님의 총명이 모든 사리를 잘 판단한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뵈오니 그렇지 않으십니다. 무릇 임금 된 자로서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지 않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지 않는 이는 드뭅니다. 그래서 맹자(孟子)는 불우한 가운데 일생을 마쳤고, 풍당(馮唐)은 낭관(郞官)으로 파묻혀 머리가 백발이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이러하오니 저인들 어찌하겠습니까?”

  화왕은 마침내 다음의 말을 되풀이하였다.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다.”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 화왕


■ 핵심 정리

• 갈래 : 설화, 우화

• 제재 : 꽃

• 주제 : 제왕의 도리에 대한 충언

• 특징 :  

 ①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설화임.

 ② 의인체 설화로 고려 시대 가전체를 비롯한 의인화 문학의 기본 틀이 됨.

 ③ 인물의 갈등 상황을 설정하여 흥미를 유발함.

 ④ 고사(古事)를 인용하여 교훈적 의도를 효과적으로 드러냄.


■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신라 신문왕에게 설총이 들려준 교훈담이다. ‘화왕’과 ‘장미’, ‘백두옹’이라는 의인화된 인물을 통하여 군왕의 도리와 마음가짐에 대한 경계의 이야기로, 신문왕은 이야기를 듣고 뜻이 매우 깊다며 후세의 임금들에게 경계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아래와 같은 액자형 구성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지학사 T-Solution 자료실 참고


■ 작품 해설 2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설화로, ‘동문선’에는 ‘풍왕서’라는 제목으로 실려 전해 온다. 신라 신문왕 때의 설총(薛聰)이 한문으로 지은 우언적(寓言的)인 단편 산문이다. 어느 날 무슨 신기한 이야기를 하라는 신문왕의 명을 받고 들려 준 이야기라고 하는데, 꽃을 의인화하여 임금을 충고한 풍자적인 내용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적인 기록이며, 후대의 가전체 소설은 이 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은 꽃을 의인화하여 쓴 서사문학 작품으로는 최초의 것이다. 이처럼 사물을 의인화 한 작품을 만드는 전통은 고려 시대의 가전문학으로 이어지고, 조선 시대에 이르면 심성을 의인화한 소설로 동물을 의인화한 소설 등으로 발전적인 변모를 하게 된다. 조선 시대에 나온 꽃을 의인화한 대표적인 소설로는 '화사(花史)'를 들 수 있다.

 하여간 이 작품은 식물을 의인화해서 사람의 처신을 말함으로써 문학적 표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여 후대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의인 설화로서 문학적인 가치가 있다.

 백두옹으로 자처하는 인물이 화왕 앞에 나타나서, 그 동안의 생활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충간한 말은 깊이 새겨야 할 뜻을 담고 있다. 서울 밖 한길가에 산다고 하면서 자연의 경치를 말한 데서는 선비의 고결한 품성에 관한 은근한 자부심이 나타나있다. 즉, 화려한 서울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마음의 바른 도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임금에게 하는 말은 부귀만 누리며 만족할 것이 아니라 원기를 돋우고 독을 제거하는 약이 또한 필요한 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 약이야말로 백두옹이 제시해 줄 수 있는 마음의 바른 도리이다.

 설총은 이런 구실을 하는 백두옹으로 자처하고자 했고, 신문왕은 또 그 점을 인정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지극히 단순한 에피소드로, 왕에게 신하를 가려 뽑는 슬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어진 임금 밑에는 어진 신하가 모이고 폭군(暴君) 밑에는 간신들이 모인다는 역사적 교훈을 꽃에 비겨서 상기시키는 이 작품은 반드시 왕이나 지체 높은 사람에게만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평범한 속담과도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교훈은 군주와 신하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교우관계, 사제 관계 등 모든 인간 관계에 적용되는 것이며, 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의 갈등, 가치 판단, 도덕적 책임에도 관련된다. 특히 작품의 전개에서 왕의 심리에 갈등을 도입하여 위기를 설정하는 장면은 뛰어나다.

 이러한 문학적 특징은,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심성을 의인화한 소설, 동물을 의인화한 소설 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꽃을 의인화한 '화사', 심성을 의인화한 한문 소설 '수성지', 동물을 의인화한 한글 소설 '장끼전' 등이 그 예이다.


■ 심화 내용 연구

1. 백두옹의 말하기 방식과 그 전달 효과

  ‘백두옹’은 자신이 사는 서울 밖 한길가의 자연 경관을 말하면서 자신의 고결함을 스스로 내세워 청자인 ‘화왕’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한편, 옛 문헌과 고사를 인용하는 등 비유적인 말하기 방법을 사용하여 주장의 타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2. 우화의 특징과 인물 형상화 방법

  우화(寓話, fable)란 동식물을 인간에 빗대어 풍자한 이야기이다. 이 설화에서 ‘장미’를 ‘붉은 얼굴에 옥 같은 이와 신선하고 탐스러운 감색 나들이 옷’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 것은 ‘장미’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인물의 성격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백두옹’의 경우 ‘손에는 지팡이, 머리는 백발을 하’였다는 표현을 통해 연륜이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드러내고 있다.


3. ‘화왕계’의 등장인물

 - 화왕(모란) :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인물로서, 장미꽃과 같이 아양떠는 간신들의 말에 귀기울이면서 그들을 가까이하고, 할미꽃처럼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멀리하는 봉건 군주의 형상이다.

 - 가인(장미) : 봉건 군주에게 아첨하여 권세를 누리고자 하는 부정적 인물이다.

 - 백두옹(할미꽃) : 자진하여 화왕을 찾아와 우의적인 발언을 통하여 바른 도리로써 정치를 해야 함을 완곡하게 주장하고, 부귀에 안주하는 요망한 무리들을 가까이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청렴한 인물이다.


4. ‘화왕계’의 풍자적 성격

 풍자란 사물에 빗대어 주제를 간접적으로 돌려서 드러내는 표현 방법으로 대체로 인물 그 자체보다는 그 인물이 지니고 있는 생각이나 태도 그리고 행동 방식에 대해 비판적 관심을 표시한다. 이 작품도 사람을 꽃에 빗대어 그 주제를 우의적으로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풍자적 성격을 지닌다.


■ 작가 소개

 설총 : 국어국문학자료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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