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 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질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 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 껍질을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꿈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한 날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 질 때까지 놀았다
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
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빈 조개껍질에 세 든 소라게처럼
*아고리와 발가락군: 화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서로를 부르던 애칭.
2. 핵심 정리
• 갈래 : 서정시, 자유시
• 성격 : 상상적, 묘사적, 비유적
• 제재 : 이중섭 화자가 살던 고방과 그림
• 주제 : 이중섭의 삶과 이중섭이 꿈꾸던 세계를 떠올리며 느끼는 연민
• 특징
① 시인이 제주도 여행 중 서귀포에 있는 화가 이중섭이 살던 방에 와서 떠올린 생각을 시화(詩化)함.
② 이중섭의 그림이 시에 녹아 있어 생생한 이미지를 전달해 줌.
③ 종결부에 불우했던 이중섭의 삶에 대한 시인의 마음이 드러남.
• 구성 :
1~12행: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살던 방의 모습
13~25행: 이중섭이 구현한 예술 세계의 모습
26~28행: 이중섭의 삶을 떠올리며 느끼는 연민
3.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시인이 이중섭 화가가 살던 곳을 방문하고 떠올린 시상을 형상화한 시이다. 시인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가난 속에서도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하면서 이상을 추구하던 이중섭의 삶과 예술 세계를 감각적인 언어로 시적 공간에 그려낸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이상 세계의 모습과 순수한 동심이 구현된 세계의 모습은 물질적으로 궁핍했던 예술가의 삶과 대비를 이루어 한층 숭고하게 느껴진다. 작품의 말미에서는 소박한 행복조차 길게 누릴 수 없었던 이중섭의 삶에서 느껴지는 연민의 정서를 직유법과 도치법을 활용하여 인상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 수능특강 해설 참고
4. 작품 해설 2
이 작품은 2007년 제22회 ‘소월시문학상’의 수상작으로 이중섭이 제주도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하며 쓴 시이다. 비록 가난했지만 가족들과 함께 전쟁의 고통을 잊고 평화롭게 살았을 이중섭 가족의 삶의 모습과 그가 꿈꾸었던 상상의 세계가 잘 표현되어 있는 시이다.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평화로운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으며, 불우했던 화가의 삶을 안타까워하는 시인의 연민이 담겨 있어 감동을 주고 있다.
- 천재교육, 해법문학 현대시 참고
5. 심화 내용 연구
1. 표현상의 특징(수능특강 사용설명서 참고)
이 작품은 이중섭 가족의 궁핍한 삶을 보여주면서 과장된 표현을 활용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이중섭의 예술 세계를 묘사하기도 한다. 더불어 시의 말미에서는 도치법과 직유법을 통해 이중섭의 삶에서 환기되는 화자의 정서를 잘 드러내고 있다.
2. ‘총소리’와 ‘은박지’(수능특강 사용설명서 참고)
이중섭은 원산 출신이지만 6.25 전쟁으로 인해 월남하여 부산에 머물다가 다시 제주도로 이주했는데,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극도의 가난을 겪어야 했다. 작품에서 ‘총소리’는 이러한 이중섭의 삶과 연관 지어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중섭은 담뱃갑 속의 은박지를 이용한 독창적인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그려진 그림을 ‘은지화’라고 한다. 작품에서 ‘은박지’와 관련된 서술 역시 이러한 이중섭의 미술 기법과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다.
6. 작가 소개
나희덕 -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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