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명시(絶命詩) - 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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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제1수>
亂離袞到白頭年(난리곤도백두년)
幾合捐生却末然(기합연생각말연)
今日眞成無可奈(금일진성무가내)
輝輝風燭照蒼天(휘휘풍촉조창천)

 난리 통에 어느새 머리털 다 세었는데
 몇 번 목숨 버려야 했건만 그러질 못했네
 오늘은 정녕 어찌할 수 없게 되었으니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아득한 하늘 비추는구나

<제2수>
妖氣晻蘙帝星移(요기엄예제성이)
九闕沈沈晝漏遲(구권침침주루지)
詔勅從今無復有(조칙종금무복유)
琳琅一紙淚千絲(임랑일지루천사)

 요사스런 기운이 가려 임금 별자리를 옮기니
 구중궁궐 침침해져 햇살도 더디 드네.
 임금의 조칙도 이후로는 다시 없을 것이니
 구슬 같은 조서엔 눈물만 가득 흐르네.

〈제3수〉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새와 짐승은 슬피 울고 강산은 찡그리네
 무궁화 세계는 이미 사라지고 말았구나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역사를 생각하니
 세상에서 글 아는 사람 노릇 하기 어렵구나

〈제4수〉
曾無支厦半椽功(증무지하반연공)
只是成仁不是忠(지시성인불시충)
止竟僅能追尹穀(지경근능추윤곡)
當時愧不躡陳東(당시괴불섭진동)
 

 일찍이 나라 위한 작은 공도 없었으니
 나의 죽음은 인(仁)일망정 충성은 아니로다.
 끝맺음이 겨우 윤곡을 따르는데 그쳤을 뿐
 당시의 진동을 좇지 못함이 부끄럽기만 하네.

 

2. 핵심 정리

• 갈래 : 한시, 7언 절구
• 성격 : 우국적, 고백적, 저항적, 비탄적
• 제재 : 국권의 피탈
• 주제 : 나라를 잃은 지식인의 절망과 슬픔
• 특징 :
 ① ‘기-승-전-결’의 4단 구성을 취함
 ② 대유법, 감정 이입 등을 사용하여 시적 화자의 정서를 드러냄
 ③ 시적 화자의 비통한 심정을 고백적으로 나타냄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냄

 

3. 작품 해설 1

 이 작품은 ‘절명시(목숨을 끊으며 지은 시)’ 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10년 국권 피탈의 소식을 들은 후 작가가 자결을 하면서 남긴 총 4수의 한시이다. 이 시에는 망국에 대한 절망과 통분의 심정을 토로하면서도 글 아는 이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 담겨 있다. 1905년 일제가 을사조약을 체결하자 중국에 있던 김택영과 함께 국권 회복 운동을 하기 위해 망명을 시도하다 실패했던 작가의 생애를 고려할 때,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자책과 부끄러움은 ‘글 아는 사람’으로서 역사적 현실 앞에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과 소명을 다하지 못한 괴로움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천재교육, 해법 문학 참고

4. 작품 해설 2

 칠언절구 4수이다. 김택영(金澤榮)이 편한 『매천집(梅泉集)』(7권, 1911, 상해) 권5에 수록되어 전한다. 「절명시」는 작자 황현이 한일 합병을 당하여 8월 7일(음력) 더덕술에 아편을 타 마시고 자결하면서 남긴 시이다.

 황현은 종사(宗社)가 망하는 날 국민이면 누구라도 죽어야 옳다고 여겼다. 사대부들이 염치를 중히 하지 못하고 직분을 다하지 못하여 종사를 망쳐 놓고도 자책할 줄 모른다고 통탄하였다. 그는 인간 양심을 지키려는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순명(殉名: 올바른 명분을 위하여 목숨을 버림)한 것이었다. 

 「절명시」 제 1수에서 작자는 이미 을사년부터 순명을 결심해왔음을 말한다. 창천을 비출 촛불에다 자신의 외가닥 양심을 비유하고 있다. “난리통에 어느새 머리만 허예졌누/그 몇번 목숨을 버리렸건만 그러질 못했던 터/하지만 오늘은 정녕 어쩔 수가 없으니/바람에 흔들리는 촛불만이 아득한 하늘을 비추는구나(亂離滾到白頭年 幾合捐生却未然 今日眞成無可奈 輝輝風燭照蒼天).”

 「절명시」 제 2수는 나라의 종언(終焉)을 고하는 양국조서(讓國詔書)가 체결되었으므로 옥음(玉音 : 임금의 음성)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하며 슬퍼하였다. 「절명시」 제 3수는 식자인(識字人)으로서의 자책을 드러내었다. “새짐승 슬피 울고 산과 바다도 찡기는 듯/무궁화 삼천리가 다 영락하다니/가을밤 등불 아래 곰곰 생각하니/이승에서 식자인 구실하기 정히 어렵네(鳥獸哀鳴海岳嚬 槿花世界已沈淪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절명시」 제 4수는 자신이 죽는 것은 충(忠)을 다하고자 함이 아니라 인(仁)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러나 적을 탄핵하다가 참형 당한 진동(陳東)을 본받지 못하고 겨우 몽고병의 침입 때에 자분(自焚)하고 만 윤곡(尹穀)의 뒤나 따를 뿐이라고 통탄하였다. 「절명시」는 우국(憂國)의식이 짙은 높은 수준의 시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

 

5. 심화 내용 연구

1. ‘글 아는 사람 노릇’의 의미(천재교육 참고)

 황현이 망국이라는 시대 현실에 대응하는 태도는 자결이었다. 이러한 현실 대응 태도는 그가 시대의 지식인이자 선비였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글로써 일제와 대결하는 것은 무력했고, 답답한 시대 현실 앞에서 황현은 절망하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총을 들고 투쟁할 만한 체질과 사상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가는 자결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망국의 절망과 분노, 지식인의 고뇌를 시를 통해 세상에 알렸다.

 

2. ‘절명시’에 드러난 당시의 시대 상황(천재교육 참고)

 이 시의 1~3수에는 당시의 시대 상황이 다음과 같이 드러나 있다. 제1수에서는 이미 ‘많이 겪은 난리’로 자결을 고민하다가 ‘나라 망한 오늘’ 그것을 결심했음을 말한다. 제2수에서는 나라의 앞일을 걱정하는데, 현재 ‘요사스런 기운’이 가득하여 앞으로는 ‘임금의 조칙’이 내려지지 못할 것을 슬퍼한다. 제3수에서는 ‘새, 짐승, 강산’ 등에 감정을 이입하고, ‘무궁화 세계는 이미 사라지고’ 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등불’ 아래에서 망국의 상황에서 지식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책임감을 느끼며 그에 관한 역사를 생각하고 있다.

 

3. 표현상의 특징(미래엔 지도서 참고)

- 감정 이입 : ‘새와 짐승은 슬피 울고 강산은 찡그리네.’ : ‘새’와 ‘짐승’, ‘강산’에 감정을 이입하여 시적 화자의 슬픔과 안타까움을 표현함.

- 대유법 : ‘무궁화 세계는 이미 사라지고 말았구나.’ : ‘무궁화 세계’로 우리나라를 표현함.

 

6. 작가 소개

황현 – 두산 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55803&cid=40942&categoryId=39201 

 

황현

조선 후기의 우국지사인 학자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피탈이 되자 국치를 통분하며 절명시 4편을 남기고 음독 순국하였다.《매천야록》은 한국 최근세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된다.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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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엮어 읽기

한시라는 갈래를 고려해서 정지상의 ‘송인’

주제가 유사한 작품으로 정몽주의 ‘단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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