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아서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혜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바람 좋은 한 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착하디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이 같이 있으면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 핵심 정리․ 갈..
■ 본문4․19가 나던 해 세밑 /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하얀 입김 뿜으며 / 열띤 토론을 벌였다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저마다 목청껏 불렀다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가 되어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회비를 만 원씩 걷고 /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월급이 얼..
■ 본문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의 뒷모양이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상징적, 반성적, 고백적• 어조 : 담담한 자기 성찰의 어조• 제재 : 녹이 낀 구리 거울과 나• 주제 : 자아 성찰을 통한 참회와 순수성의 회복 의..
■ 본문떡갈나무 숲을 걷는다. 떡갈나무 잎은 떨어져너구리나 오소리의 따뜻한 털이 되었다. 아니면,쐐기집이거나, 지난여름 풀 아래 자지러지게울어 대던 벌레들의 알의 집이 되었다. 이 숲에 그득했던 풍뎅이들의 혼례,그 눈부신 날갯짓 소리 들릴 듯한데,텃새만 남아산 아래 콩밭에 뿌려 둔 노래를 쪼아아름다운 목청 밑에 갈무리한다. 나는 떡갈나무 잎에서 노루 발자국을 찾아본다.그러나 벌써 노루는 더 깊은 골짜기를 찾아,겨울에도 얼지 않는 파릇한 산울림이 떠내려오는골짜기를 찾아 떠나갔다. 나무 등걸에 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이 깊이 숨을 들이켜나를 들이마신다. 나는 가볍게, 오늘 밤엔이 떡갈나무 숲을 온통 차지해 버리는 별이 될 것 같다. 떡갈나무 숲에 남아 있는 열매 하나.어느 산짐승이 혀로 핥아 보다가, 뒤에 ..
■ 본문대바람 소리들리더니소소한 대바람 소리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눈 머금은 구름이 가고 오는지미닫이에 가끔그늘이 진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좁은 서실(書室)을무료히 거닐다앉았다, 누웠다잠들다 깨어 보면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병풍의 ‘낙지론(樂志論)’을읽어도 보고…… 그렇다!아무리 쪼들리고웅숭그릴지언정—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대바람 타고들려오는머언 거문고 소리…… ■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관조적․ 주제 : 삶에 대한 깨달음, 은둔과 달관의 삶에 대한 다짐․ 특징 : ① 계절적 배경을 제시한 다음, 서정적인 감정을 토로함 ② 옛 글귀를 인용하여 화자의 깨달음을 보여 줌 ■ 작품 해설 1 이 시는 시인이 1970년에 발표한 시집 『대바람 소리』에 ..
■ 본문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 참새 떼 왁자히 내려앉는 대숲 마을의노오란 초가을의 초가지붕에 있지 아니하고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 토란잎에 후두둑 빗방울 스치고 가는여름날의 고요 적막한 뒤란에 있지 아니하고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 추수 끝난 빈 들판을 쿵쿵 울리며 가는서늘한 뜨거운 기적 소리에 있지 아니하고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 빈 들길을 걸어 걸어 흰 옷자락 날리며서울로 가는 순이 누나의 파르라한 옷고름에 있지 아니하고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 아늑한 상큼한 짚벼늘에 파묻혀나를 부르는 소리도 잊어버린 채까닭 모를 굵은 눈물 흘리던 그 어린 저녁 무렵에도 있지 아니하고내 마음의 마음의 고향은싸락눈 홀로 이마에 받으며내가 그 어둑한 신작로 길로 나섰을 때 끝났다눈 위로 막 얼어붙기 시작한작디작은..
■ 본문어머님,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목조 적산 가옥 이 층 다다미방의벌거숭이 유리창이 깨질 듯 울어 대던 외풍 탓으로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아버지 가랭이 사이로 시린 발을 밀어 넣고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겨우 잠이 들곤 했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덮어 주며늘 그런 추억으로 마음이 아프고,나를 품어 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어 있음을 생각하면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오늘은 영하(零下)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 주던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이승의 물로 화신(化身)해 있음을 보았습니다.품 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 무사히 ..
■ 본문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 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거푼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주지기• 어조 : 감정이 절제된 객관적 어조• 성격 : 감각적, 상징적, 시각적, 주지적, 회화적• 제재 : 바다와 나비• 주제 :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좌절• 특징 : ① 흰색과 푸른색의 색채 대비를 통해 나비의 연약함과 바다의 냉혹함을 동시에 강조함. ② 각 연을‘-다’의 종결 어미로 끝맺음으로써 객관적이고 절제된 태도를 표현함. ③ 객관적 시선을 통해 시적 긴장감을 형성함. ■ 작품 해설 1..
■ 본문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 본문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주지시, 상징시- 갈래 : 내재율- 어조 : 사물의 존재 의미를 파악하려는 관념적, 철학적 어조- 심상 : 비유적, 상징적 심상- 성격 : 관념적, 주지적, 상징적- 구성 : 1연 인식되지 않은 존재 2연 의미를 부여받은 존재 3연 존재 의미를 인정받고 싶은 ‘나’ 4연 존재 의미를 인정받고 싶..
■ 본문굴참나무는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해만 뜨면 솟아오르는 일을 한다 늘 새롭게 솟아오르므로 우리는 굴참나무가 새로운 줄 모른다 굴참나무는 아침 일찍 눈을 뜨고 일어나자마자 대문을 열고 안 보이는 나라로 간다 네거리 지나고 시장통과 철길을 건너 천관산 입구에 이르면 굴참나무의 마음을 벌써 달떠올라 해의 심장을 쫓는 예감에 싸인다 그때쯤이면 아이들도 산란한 꿈에서 깨어나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검은 숲 위로 오른다 볼이 붉은 막내까지도 큼큼큼 기침을 하며 이파리들이 쏟아지듯 빛을 토하는 잡목 숲 옆구리를 빠져나가 공중으로 오른다 나무들이 일제히 손을 벌리고 아일들이 일제히 손을 벌리고 아이들은 옹케도 피해 간다 아이들의 길과 영토는 하늘에 있다 그곳에서는 새들과 무리지어 비행할 수가 있다 그들은 종다리처럼 ..
■ 본문거룩한 분노는종교보다도 깊고불붙는 정열은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그 물결 위에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높게 흔들리우며그 석류 속 같은 입술‘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그 물결 위에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그대의 꽃다운 혼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 ■ 핵심 정리갈래 : 서정시성격 : 민족적, 감각적, 민요적, 추모적어조 : 경건하고 도도한 어조제재 : 논개의 의로운 죽음주제 : 역사에 길이 빛날 논개의 의로운 죽음과 헌신적 애국심 ■ 작품 해설 1 논개는 임진왜란 때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을 안고 남강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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